미국경제의 다중침체(multi-dip)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멀티딥이란 모건스탠리의 스티븐 로치가 쓴 표현으로 경기회복과 침체국면이 여러 차례 반복되는 현상을 말한다. 일단 경제성장률의 추이로 본다면 멀티딥에 대한 우려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4분기에 5.0%의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미국경제는 2·4분기에는 1.3%로 급락했다. 그 후 3·4분기에는 다시 4.0%로 회복했으나 오는 30일에 발표될 4·4분기 성장률은 1% 이하로 추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경제가 멀티딥에 빠질 것인가.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이번 미국경기 회복의 배경부터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아직까지 경기저점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경기판단 방법을 종합해 보면 미국 경기는 지난해 1·4분기를 저점으로 회복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종전과 다른 것은 이번 경기회복은 수출과 기업의 설비투자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부(富)의 효과'에 주로 기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기업들이 분식회계 파동에서 벗어나면서 지난해 10월 중순 이후 상승세를 보이던 미국주가는 이라크와의 전쟁,북한의 핵문제와 같은 정치적 변수로 인해 다시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 주가가 더 하락된다면 역자산효과로 멀티딥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우려속에 미국경제가 괜찮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지난해 이후 미국경제가 회복과 침체국면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금융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들의 견해다. 이 대목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즘 경제현상에서 금융부문이 실물부문보다 월등히 커진 점을 이해해야 한다. 현재 국제 자금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각종 펀드들의 레버리지 투자를 감안한다면 금융부문의 크기가 실물부문보다 약 4배 정도가 크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상황에서는 금융이 더이상 실물부문의 동맥역할을 정확히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주가와 통화가치가 떨어진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실물경제 침체를 의미한다고 해석해서는 경기를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현 시점이 미국경제가 멀티딥에 떨어질 수 있는 임계수준에 와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앞으로 주가가 계속해서 떨어지면 미국경제의 멀티딥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 시점에서 미국의 금융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손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FRB가 금리를 추가적으로 내리는 방안이다. 오는 28일부터 양일간 열리는 FRB회의에서 금리가 또다시 인하될 것으로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요즘 미국경제에 좋은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뉴욕시장이 전형적인 '트레이더 장세(trader's market)'를 나타내고 있는 점이다. 그동안 미 증시를 짓눌러 왔던 불안요인들도 많이 해소됐다. 미국기업들의 분식회계 파동은 지난해 8월 재무제표 인증식을 계기로 일단락됐다. 미국기업들의 실적도 지난해 3·4분기 이후 프리어닝 시즌의 내용과 달리 비교적 괜찮게 발표되고 있다. 결국은 현 시점에서 미국경제가 멀티딥에 빠지거나 회복된다고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 경제주체들이 현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경제활동을 하느냐이다. 그것에 따라 미국경제의 향방이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미국 경제주체들이 이라크와의 전쟁 등을 비관해 경제심리마저 위축될 경우 미국경제는 우려대로 멀티딥에 빠지게 된다. 이 문제는 비단 미국경제이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에게 해당된다. 한 나라의 경제성장에서 그 나라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갈수록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