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실시된 공정공시제도가 시행 한달째를 맞아 투자자들에게 공평한 정보공유 기회를 제공하는데는 기여하고 있으나 기업들에게는 혼란과 부담을 가중시켜 여전히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제도시행이 한달째를 맞고 있으나 아직도 공정공시에 익숙하지 않은데다 공정공시를 해야하는 사항에 대한 세부적인 기준도 애매모호한게 많아 이를 지키는데 어려움과 혼란을 겪고 있다. 기업들은 `시범케이스'로 걸려 불이익을 당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방침 아래 아예 입을 다물거나 자체적인 기준을 만들어 제도에 적응하고는 있으나 업무부담 가중에 따른 기업활동의 지장 등 현실적으로 문제가 여전하다며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특히 공정공시를 해야 하는건지, 안해도 되는건지가 명확치 않은 경우도 많아 기업들은 수시로 증권거래소 등에 문의를 하는 한편 만일의 경우 `면피'라도 하기 위해 불필요한 사항까지도 공정공시를 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에따라 기업들은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공정공시에 대한 보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기업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포괄주의' 형태로 제도가 보완 또는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업 입단속 강화..업무부담도 가중 = 기업들은 공정공시 시행과 관련, 시범케이스로 걸려 호되게 당할 것을 가장 우려, 중요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내부 입단속을 강화하는 등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제도 시행 초기에 일부 통계가 보도되자 해당사업부 사장이 임원들을 불러 `앞으로 취재를 위한 전화가 와도 안부만 전하라'고 엄명을 내릴 정도로 내부 입단속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만일 경영에 관한 주요 내용이 외부로 나가 회사에 금전적 손실이나 이미지를 실추시킬 경우 해당 임원을 징계한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뿐 아니라 대부분 기업들은 이달들어 사내게시판 등을 통해 전사원을 대상으로 공정공시 제도의 개요와 언론취재 대응요령 등을 고지하고 애매한 부분이 있을 경우 담당부서와 즉시 상의하도록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이 정보공개의 `공정성'에만 신경쓰고 민감한 정보의 공개는 되도록 피하거나 무조건 입을 다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반대로 조금만 애매해도 일단 공정공시를 해놓고 면피해 보자는 심리때문에 불필요한 내용까지도 마구 공시, 투자자의 혼란만 일으킬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몸을 사리다보니 예컨대 매출규모의 10% 이상 수주만 공시하면 되는데 그 이하도 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등 굳이 필요없는 사안까지 공정공시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 때문에 공시 빈도 자체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공정공시의 시행으로 기업들이 공시에 신경을 많이 쓰다보니 해당 사항이 발생할 경우 사업부서와 공시 담당부서간에 논의할 사항이 많아져 업무부담이가중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급속도로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하기에도 바쁜 기업들 입장에서는 공시때문에 낭비하는 시간이 많아져 거래소 상장 및 코스닥 등록기업 전체로 치면 공시업무로 인해 빼앗기는 `전력의 소모'가 엄청나다는 분석이다. ◆애매한 기준 시급히 보완 필요 = 기업들은 어떤 내용을 공시에 올리고, 어떤 내용을 올리지 않을 것인가를 두고 여전히 가장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실제로 코스닥의 공정공시 상담센터에 접수된 내용의 대부분은 '이 정보가 공정공시 사항에 해당되느냐'는 질문이었고 공정공시후 코스닥공시서비스팀에 걸려오는 전체 문의전화도 2배 이상 크게 늘었다. 또한 기업들이 공정공시를 담당하는 주무기관에 사안별로 문의를 해도 이들 역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애매한 답변만 내놓는 경우도 왕왕 있어 고민을 풀지못하고 있다. 한 대기업은 기자가 취재하는 사안에 대해 말로만 취재에 응했을 경우와 특정한 자료를 제공했을 경우에 각각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문의한 결과, 말로 한 것은 공시를 안해도 되지만 자료를 준 것은 공시를 해야한다는 다소 애매한 답변만 들었다. 이에따라 기업 실무자들은 책임소재와 판단을 명확히 할 수 있는 보다 구체화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거나,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기업의 자율성을 보다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시급히 개선.보완해 줄 것을 한결같이 바라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지난 14일 열린 회장단회의에서 공정공시 제도와 관련, 공시대상 등을 보다 구체화하고 처벌규정도 완화하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증권거래소와 금융당국은 공정공시 시행 초기의 혼란과 부작용을 막고 상장.등록 기업이 적응할 여유를 주기 위해 앞으로 6개월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재보다 계도 위주의 활동을 펼치는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지만 이 기간에 제도가 보완.개선되지 않으며 기업들은 앞으로도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