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원 환율이 상승 탄력을 받고 있다. 23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날종가보다 10원 이상 상승, 지난 13일 이래 열흘만에 처음으로 1,200원대를 회복하는 등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장중 전날 종가대비 11.20원이 오른 1,204.80원까지 고점을 높여 장중 기준으로 지난 9일 1,211원 이래 가장 높은 수준. 이후 달러/엔의 반락으로 일부 조정을 받고 있지만 1,200원대 환율은 유지되고 있다. 특히 달러/엔 환율이 국내 외환시장에 강한 상승 모멘텀으로 작용하고 있다. 뉴욕 증시의 강세를 배경으로 조심스레 상승 추세 진입을 테스트하는 달러/엔은 시장 잣대로서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월말을 앞둔 업체 네고물량 부담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달러/엔에 휘둘리는 '부화뇌동'의 장세를 연출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추세 반전'이냐, '레인지 장세'냐 하는 시각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같은 시각 차는 달러/엔을 바라보는 견해와 연관돼 있다. 향후 방향은 "뉴욕 증시와 미국 달러화에 물어보라"는 말이 정석처럼 유포돼 있는 셈. ◆ 미국 달러화의 부력 = 시장의 초점은 일단 '미국 달러화'의 방향에 맞춰져 있다. 뉴욕 증시의 상승 탄력이 미국 달러화의 강세 지속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다. 국제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최근 '달러를 사라'고 거듭 주문하고 있다. 달러표시 자산에 대한 투자심리의 회복세는 뉴욕 증시의 랠리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최근 미국 경제지표의 부진이 거듭됐음에도 뉴욕 증시는 미국 CEO들의 '회계 도덕성 회복 선언' 이후 내성을 강화, '더블딥(이중침체)' 우려를 딛고 상승 탄력을 받고 있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Business Week)는 "최근 경제지표들의 부진이 더블딥 우려를 키웠으나 실상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며 "경제지표들의 단기 변동이 아니라 장기 트렌드를 보면 '완만한 회복' 시나리오는 여전히 건재하다"고 주장했다. 달러 약세 추세를 주도했던 미국의 금융불안은 '바닥'에 대한 지지력을 구축한 뒤 강세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국제 투자자들은 뉴욕 증시에서 빼간 자금을 다시 넣고 있으며 이미 발행됐거나 발행을 앞둔 미국 회사채에 추가 자금을 투입, 더 큰 수익을 갈망하고 있다. 일시적인 우려감을 자아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달러 유출도 알와드 사우디 왕자의 '미국내 자산비중 확대' 언급으로 잠잠해지는 양상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전망이 아직 불투명한 데다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에 대한 부담, 미국-이라크 갈등 고조에 따른 전쟁발발 가능성 등 달러 부양의 발목을 잡을만한 요인도 상존한다. 달러 추격매수의 동인은 부족하다는 견해. 달러/엔은 일단 앞선 뉴욕장에서 기술적인 저항선이던 119.30엔을 가뿐히 상향돌파, 10일여만에 120엔대로 올라섰다. 그러나 이달 들어 116∼121엔의 박스권에 여전히 들어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하락 추세의 기술적 조정은 유효하다. 일본 수출업체들이 대기매물을 포진하고 있는 120엔대 초반에서 물량 소화가 얼마만큼 이뤄질 것인지가 관건. 물량을 소화하면서 120.30엔을 완전히 뚫을 경우 달러/엔은 122∼123엔까지 상승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달러/엔은 방향없이 당분간 제한된 범위에서 상승과 하락요인의 교차로 시장 심리의 혼선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박스권이냐, 추세 전환의 신호냐 = 달러/엔의 등락이 달러/원의 방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최근 모멘텀 결핍의 시장 상황을 반영하듯 레인지 장세로 일관했던 환율은 일단 지난달 22일 종가인 1,165.60원에 대한 바닥 인식이 공고해졌다.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 바닥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됐다. 문제는 제한된 박스권의 장세가 여전하냐, 그렇지 않으면 본격적인 반등을 꾀하는 추세 전환에 나서느냐는 것이다. 시티살로먼스미스바니(SSB)는 최근 환율 하락의 주요인이었던 미국발 금융불안이 해소되는 기미를 보이고 미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지지 않는 한 환율이 다시 연중 최저치로 추락할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또 달러/엔 환율이 6개월내 132엔까지 상승하면서 달러/원의 상승을 유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달러/원 환율이 지난달 1,160원대까지 떨어져 리포트의 '예측성'이 다소 훼손되긴 했으나 굳세게 '상승'쪽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다. 이날 달러/원 환율은 급등했지만 이달 들어 움직였던 1,180∼1,210원의 박스권 안에 아직 머물러 있다. 신한은행 최정선 딜러는 "오늘 달러/엔을 따라 오르긴 했으나 아직 박스권 형태가 유효하며 레벨만 바뀐 정도"라며 "박스권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더 큰 모멘텀이 있거나 주변 요인들이 진전돼야 한다"고 말했다. 위아래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상태의 박스권에서 레벨만 높아진 정도라는 것. 달러 물량 공급이 많은 월말에 근접한다는 것도 박스권 탈피를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를 뒷받침한다. 한미은행 고상준 딜러는 "달러/엔이 122∼123엔 2차 상승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장담은 할 수 없다"며 "달러/원이나 달러/엔이나 전 고점을 뚫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1,210원 돌파여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월말로 접어들고 있어 애매하긴 하나 추세 전환을 언급하기엔 아직 이르다"며 "1,180∼1,210원 박스권이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했다. 피스트글로벌의 이석재 외환전략팀장은 "달러/엔 움직임에 따라 1,180∼1,210원의 박스권이 유지될 것"이라며 "특별한 이슈도 없고 뉴욕 주식시장에 연동하면서 월말 네고장세도 반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미국 뉴욕증시 등의 요인이 달러화를 끌어올릴 가능성도 상존한다. 상승모멘텀이 불씨를 남겨놓고 있는 상황에서 달러자산에 대한 투자심리의 회복정도가 수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달러/원은 이같은 달러/엔의 상승 기대감에 맞춰 조심스레 추세 전환 시점 도달여부를 타진하게 될 수도 있다. 외환은행 하종수 딜러는 "월말인 점을 감안해야 하겠으나 달러/엔이 상승 추세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며 "1,190원대가 '싸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며 1,200원 밑에서는 매수세가 대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HSBC의 주재석 딜러는 "최근 역외에서 달러/엔 상승 모멘텀이 꺾였다고 봤으나 저항선이던 119.30엔을 쉽게 뚫어 그 모멘텀이 깨졌다고 보기 힘들다"며 "달러/엔이 위로 방향을 잡는 것이 아닌가 싶고 조심스럽긴 하나 달러/원도 추세 반전의 기미가 보인다"고 언급했다. 한경닷컴 이준수기자 jslyd01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