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환율이 일본 엔화 움직임을 그대로 따르는 '원.엔 동조화' 현상이 갈수록 고착화되고 있다. 국내 주가나 금리가 미국시장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반면 환율은 엔에 거의 예속된 듯한 인상마저 준다. 외환딜러들은 매일 아침 모니터 한켠에 도쿄시장의 엔.달러 환율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화면을 띄워 놓고 업무를 시작할 정도다. 해바라기가 해를 좇듯이 원화가 엔화를 따라가는 '엔 바라기' 현상은 이제 매일 반복되는 일상사가 됐다. 한국의 경제구조가 미국의 영향권 아래 있으면서도 환율만은 유독 '엔 블록'에 갇혀있다는 사실은 의아스런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엔화와 함께 춤을' 최근 넉달새 원화환율이 1천3백32원에서 1천1백80원대로 수직하락한 원인은 무엇보다 엔화환율 하락(달러약세, 엔 강세)이 주요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원화와 엔화의 동조화 정도를 표시하는 '상관계수'가 올 2.4분기중 0.92∼0.97을 기록했다. 1.4분기의 0.56∼0.77에 비해 월등히 높아졌다. 7월에도 상관계수가 0.91이었다. 상관계수가 '1'에 가까울수록 두 나라 환율이 그만큼 서로 비슷하게 움직였음을 의미한다. ◆ 엔 동조는 '유행'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은 대부분 일본 제품과 경합한다. 따라서 교역구조상 엔화환율이 올라 한국 수출품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원화환율도 덩달아 오르는게 기본틀로 굳어져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정부가 수출을 의식해 원.엔환율을 1백엔당 1천원 수준으로 관리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감도 한몫한다. 또 원화와 엔화간 직접거래시장이 미미해 환율면에서 양국 경제의 펀더멘털 차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최근 상황은 이런 이유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이응백 한은 운용2팀장은 "요즘의 엔 동조화는 일종의 패션(유행) 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구길모 외환은행 원·달러팀 과장은 "외환딜러들이 엔화를 따르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한 듯하다"고 말했다. 국내 외환거래가 하루 30억∼40억달러에 불과한데 누가 감히 독자노선을 걷겠느냐는 얘기다. ◆ 걱정되는 부작용 원.엔 동조화는 국내에서 이중고로 나타난다. 대일 경쟁력은 나아지는게 없이 중국 대만 등과의 경쟁에선 불리한 여건으로 작용하기 때문.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과거에는 환율이 내릴 때 엔화보다 원화가 더 떨어졌지만 요즘은 두 통화의 하락폭이 거의 비슷해 환율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영경 한은 조사국 과장도 "올들어 7월까지 원화가 달러대비 10.6% 절상된 반면 고정환율제인 중국 위안화는 실질적으로 절하돼 국내 수출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