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팔고 있다. 그 바람에 종합주가지수 700선이 무너졌다. 외국인은 26일 하루에만 3천3백37억원어치를 내다팔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매도는 대량의 달러 환전 수요로 이어져 원화환율이 급등,작년 4월4일이후 최대폭인 19원50전 치솟으며 단숨에 1천1백90원대를 회복했다. 이날 증시가 여느때와 달랐던 것은 외국인들이 국내 대표주를 집중 매각했다는 점이다. 외국인은 이날 삼성전자와 SK텔레콤 주식 1천5백68억원어치와 7백56억원어치를 매도했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의 시가총액 비중은 24%(25일 기준)에 달한다. 두 종목의 주가가 5%씩 떨어지면 지수는 10포인트 가까이 하락하게 돼 있다. '외국인의 대표주 집중매도'라는 직격탄을 받아 700선이 무너졌다는 뜻이다. ◆셀 코리아에 나섰나 외국인이 한국의 대표주를 팔았다는 것은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를 본격적인 셀 코리아의 시그널로 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텔레콤 주식을 판 것은 외부에서 날아온 유탄이 기폭제가 됐다고 풀이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대만 TSMC사가 올하반기 실적이 악화될 것이라고 발표한 것이 악재가 됐다. SK텔레콤은 DR(예탁증서)발행가액이 낮게 책정되면서 매도물량이 쏟아졌다. 한국증시는 물론 두 회사의 펀더멘털과는 큰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최근 9일간 이어진 외국인의 매도공세는 간과하기 어렵지만 분명 과거의 외국인 이탈 추세와는 다르다. 외국인이 국내주식을 파는 것은 미국증시에 대한 불투명성에서 비롯된 미국 뮤추얼펀드에 대한 환매요구에 응하기 위한 대금을 마련한 조치로 풀이된다. 과거처럼 한국시장에 대한 평가를 근거로 주식을 파는 게 아니란 얘기다. ◆외국인 매도는 계속될까 외국인의 매도강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 3일동안 6천5백억원어치 가량을 팔았다. 지난 6월 한달동안 판 것보다 최근 3일간 매도물량이 3배 가까이 크다. 26일에는 국내증시 사상 4번째로 많은 3천3백37억원어치를 매도했다. 이같은 흐름은 미국 뮤추얼펀드에서 5주째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올들어 지난주까지 뮤추얼펀드 수탁고는 2백50억달러가 준데 이어 이번주에만 1백20억달러가 이탈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래에셋 이종우 전략운용실장은 "미국의 기관투자가가 갖고 있는 해외 주식은 2조5천억달러정도 된다"며 "아시아권 전역에서 자금을 회수하는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동원증권 리서치센터 강성모 수석연구원은 "미국의 주식운용자금중 아시아에 들어와 있는 자금은 일본을 제외하고 3%안팎"이라며 "시장 규모를 감안할 때 최근 회수하는 자금규모는 시장에 적지않은 충격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미래에셋 이정호 연구위원은 "미국 GE나 IBM과 같은 대형주의 주가가 지난 98년 롱텀캐피털 도산때의 저점보단 위에 머물고 있다"며 "이들 종목이 저점을 뚫고 내려가면 침체국면이 장기화되는 신호로 받아들여 환매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반대로 반등한다면 환매가 줄어들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수급과 펀더멘털의 대결 외국인 매도공세로 한국증시는 돈의 움직임(수급)과 펀더멘털(기업실적)간의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기관과 개인투자자는 주식을 사들이는 반면 외국인은 매물을 내놓는 형국이다. 기관과 개인이 주식을 사는 이유는 국내기업의 실적이 어느때보다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기업의 실적을 따질 여력이 별로 없다. 전체 투자비중을 놓고 전략을 다시 짜야하는 입장이다. 조주현 기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