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X 전투기를 뒷꽁무니로 샀다는데, 하이닉스도 미국의 압력에 떼밀려 뒷거래로 파는 것 아니냐", "하이닉스는 정치적 희생물"... 28일 경기도 이천본사에서 열린 하이닉스 정기 주주총회는 매각협상에 극력 반대하는 소액주주들의 '한풀이장'을 방불케 하고 있다. 주총 의장인 박종섭 하이닉스 사장은 개회 직후부터 "왜 멀쩡히 살 수 있는 회사를 헐값매각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리는 소액주주들 앞에서 고개를 떨궈야 했다. 6조7천억원의 천문학적 빚더미에 올라앉은 하이닉스를 살리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마이크론과의 매각협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스스로도 성난 주주들의 마음을 달래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 시종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50대 소액주주는 "어마어마한 반도체회사를왜 미국에, 그것도 헐값에 팔려고 하는지 딱 부러지게 설명해달라"고 추궁했으며 수원에서 올라온 한 소액주주도 "박 사장은 정녕 하이닉스를 정치적 희생물로 삼으려는 정부와 채권단의 앞잡이가 되려고 하느냐"고 질타했다. '하이닉스 살리기 국민운동연합회' 오필근 의장은 "현재 정부.채권단이 추진중인 하이닉스 매각은 구조조정이 아니라 하이닉스를 죽이기 위해 `눈가리고 아웅하는'작전"이라고 비난하고 "반도체 값도 상승한 만큼 채권단이 마이크론에 지원하는 조건으로 하이닉스를 지원한다면 충분히 독자생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연합회 소속 소액주주는 "박 사장이 앞장서서 매각을 추진중인 정부 당국자와 채권단과 맞서 싸울 용의가 없느냐"고 따지자, 장중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로 호응했다. 이에 대해 박 사장은 "아직 마이크론과의 협상에서 분명히 합의된 것이 없고 사인(Sign)할 수 있는 단계도 아니다"라고 질문공세를 비켜갔지만 소액주주들은 좀처럼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60대 소액주주는 "하이닉스는 이미 90% 이상 매각쪽으로 방향이 정해졌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박 사장은 왜 면피용 미사여구만 늘어놓느냐"며 "매각협상에 대한 가타 부타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박 사장은 "양심을 걸고 주주들의 뜻을 무시한 채 매각을 추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만약 조금이라도 그런 일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주총장은 주총 시작 1시간 전인 오전 9시부터 소액주주들이 몰리기 시작, 주총이 열리기 시작할 무렵에는 450좌석을 다 채우고도 자리가 모자라 50여명의 주주들이 선 상태로 주총에 참석했다. 소액주주들은 주총이 시작되자 마자 앉은 자리에서 "헐값매각 중단하라", "독자생존 강구하라", "하이닉스 매각하면 나라없고 미래없다"는 등의 피켓을 들고 마이크론과의 매각협상에 반대하는 발언권을 요청, 박 사장 등 경영진을 질타했다. 주총 1시간 30여분이 지난뒤 회사직원인 듯한 주주가 소액주주들의 질문공세에 대해 "매각협상 반대 주장은 그만하고 정식 안건을 빨리 처리하자"고 경영진을 감싸는 듯한 발언을 하자, 소액주주들이 반발하면서 일부 직원들과 가벼운 몸싸움을 빚기도 했다. 소액주주 모임인 연합회측은 오후에 접어들면서 주주제안 형태로 매각반대안을 긴급안건으로 상정하는 방안을 박 사장에게 제안했으나, 법무법인 율촌 소속 강희철 변호사는 6주전 전체 주식의 1.5%를 보유한 주주들이 주주제안을 해야한다는 요건을들어 정식 안건상정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미국 마이크론은 한국내 법률자문회사인 김&장 소속 변호사를 주총장에 보내 주총 상황을 지켜보도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천=연합뉴스) 노효동기자 rhd@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