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3년여 만에 다시 달러당 1백30엔대의 엔저(低)시대로 들어갔다. 1백30엔대의 엔저는 전에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세계경제가 동시불황에 빠진 상황에서 엔화가치가 1백30엔대로 떨어지기는 처음이다. ◇ 세계경제 영향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좀 더 강하다. 일본정부는 엔저 덕에 일본경제가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수출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늘어나고, 수입물가가 올라가 디플레 현상도 어느 정도 치유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행히 엔저를 통해 일본경제가 살아난다면 세계경제도 힘을 얻게 된다. 동시불황에 빠진 세계경제로서는 미국과 일본경제가 함께 살아나야 내년에 본격적인 회복세를 탈 수 있다. 미국경제 회복만으로는 세계경제 회복에 한계가 있다. 2위 경제대국인 일본경제도 살아나야 완전한 세계경제 회복이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엔저를 어느 정도 묵인하고 있다. 하지만 엔저의 경기회복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일본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은 10~15%에 불과하다. 엔화가치가 10% 떨어져 봐야 수출은 겨우 1% 증가할 뿐이다. 따라서 GDP가 1% 늘어나려면 엔화가치가 지금보다 70~1백% 떨어져야 한다는게 모건스탠리와 UBS워버그증권의 분석이다. 결국 경기부양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한 채 국제외환시장만 불안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국 대만 싱가포르 중국 등 일본의 수출경쟁국들은 엔저에 맞춰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는 환율전쟁을 벌일 수 있다. 이 경우 이 지역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져 경제회복이 지연되는 부작용만 초래하게 된다. 동남아 각국이 최근의 엔저 상황에 촉각을 세우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엔저 상황과 전망 =엔화가치는 올들어 모두 15%(17엔) 떨어졌다. 엔저가 본격화된 이달 들어서만 5.5%(7엔)가 추락했다. 앞서 엔화가치가 달러당 1백30엔대에 있었던 때는 97년 12월~98년 10월까지 약 10개월이었다. 이 기간중 한때 1백47엔선(98년 8월)까지 폭락했었다. 당시 일본경제의 자체적인 요인보다 아시아 외환위기 때문에 엔저가 발생했다. 이와는 달리 지금은 일본경제가 좋지 않아서 엔화가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경제 회생조짐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엔저는 멈출 수 있다. 그 시기는 미국경제가 본격적으로 살아날 내년 2.4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미국경제가 회복되면 일본의 대미수출이 늘어나고 그에 따른 일본경제 회복기대감으로 엔저추세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 그때까지 엔화가 얼마나 더 떨어질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다. 일단 전문가들은 엔화가 1백40엔대로 떨어지진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 정도까지 떨어지면 아시아에 실제로 환율전쟁이 발생, 일본은 물론 아시아경제 전체가 곤경에 빠질 수 있다. 또 엔 약세를 묵인하고 있는 미국정부로서도 미 경제가 침체된 현 상태에서 1백40~1백50엔대의 초엔저 현상은 원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나친 엔저는 미국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켜 경제회복을 저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엔화가치는 당분간 달러당 1백30엔대에서 움직이다가 내년 2분기께 하락세를 멈추고 완만하게 회복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정훈 전문기자 lee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