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목동에 사는 박영운(43)씨.그는 지난 9월11일 미국테러사태가 터진이후 아예 주식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섣불리 증시에 달려들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일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최근들어선 달라졌다. 주가가 상승곡선을 긋는 것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특히 "황소(매수세력)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외국인의 힘을 보면서 지난 98년말의 대세상승이 떠올랐다. 세계적인 저금리추세와 증시로의 자금유입 조짐,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보험 증권 전기전자등 주도주의 부상 등 주변여건을 감안할때 자칫하면 영원한 낙오자가 될 것이란 불안감도 생겨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외국인에 맞서 '곰(매도세력)의 반격'을 보이는 기관투자가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조정만 바라면서 '팔자'로 버티는 기관들을 감안하면 주가가 무한정 오를 수는 없어 보인다. 특히 자신처럼 일시적으로 증시를 떠난 사람들이 다시 주식 얘기를 입에 올리는 것을 보면 조정이 임박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박영운씨는 일단 언제든지 주식에 투입할 수 있는 '실탄'을 준비한 채 시세 움직임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황소의 위세 뽐내는 외국인=지난 9월 말부터 시작된 최근의 랠리는 오로지 외국인에 의해 이뤄졌다. 지난 9월27일부터 지난 14일까지 외국인은 거래소시장에서만 2조2천8백9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15일에도 1천2백3억원의 매수 우위를 보였다. 그렇지만 외국인의 매수행진이 좀처럼 그칠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우선 세계적인 저금리 추세로 미국 뮤추얼펀드에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지난 1월이나 4월 랠리와 달리 이머징마켓도 차별화되는 양상이 역력하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기 침체에서도 올해 플러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 증시가 여전히 매력적이다. 함춘승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 전무는 "최근 한국 증시에 유입되는 자금은 내년을 겨냥한 장기투자 자금"이라며 "외국인에게 가장 매력적인 증시로 한국 증시가 꼽히고 있는 만큼 매수행진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곰의 반격으로 맞서는 기관=지난 9월27일 이후 투신사를 비롯한 기관투자가는 철저히 '팔자'로 맞섰다. 지난 14일까지의 순매도 금액은 7천2백73억원.한국통신의 SK텔레콤 지분을 은행신탁에서 매수한 것을 제외하면 순매도 금액이 1조원을 훨씬 넘는다. 기관들은 특히 국민은행이 재상장된 지난 9일 2천3백39억원어치를 매도하면서 황소에 맞서는 곰의 기세를 보여줬다. 지난 14일에도 삼성전자와 국민은행을 팔아치움으로써 외국인에 의한 장세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기관이 이처럼 매도세로 나오는 이유는 조정을 기다리기 때문이다. 기관들은 주가가 570~580선에서 조정을 받을 경우 재매수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이윤규 한국투신 이사는 "최근 일반법인을 중심으로 환매가 나타나고 있다"며 "대형 투신사의 경우 회사당 2천억원 가량의 추가 매수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관건은 개인=황소와 곰이 벌이는 싸움의 승패를 가름할 주체는 의외로 박씨같은 개인일 가능성이 높다. 개인은 지난 1월과 4월 랠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 랠리에서도 8천억원어치 이상을 팔았다. 그러나 주가가 600선을 넘어서자 증시를 다시 보는 개인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증권 은행 등 금융주와 건설주의 거래량이 늘어나고 중저가 대형주인 이른바 옐로칩이 들썩거리는 것을 보면 증시에 참여하는 개인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증시에 등을 돌렸던 박씨 같은 개인들이 다시 증시에 몰려들 경우 이번 랠리는 예상외로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기술적으로 과열국면에 접어든 점을 감안하면 570~580선에서 조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며 "실탄을 갖춘 개인이 조정기에 증시에 몰릴 경우 연말 주가는 연중 최고치를 경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