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이상' 만으로 충분...지나친 규제 역효과 불러 ] 황인학 <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이사회는 투자자를 대신하여 경영진을 감독하고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해 활동하는 기업지배구조상의 중요한 기구이다. 그러나 1997년말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우리 기업의 이사회는 내부 임원으로만 구성되는 폐쇄형 구조인데다가 이들을 평가.감독하는 시장 감시 기능도 미흡해 경영진 감독의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을뿐더러 오히려 경영진에 종속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정부는 98년에 경영진과 독립적인 관계에 있는 인사들이 25% 이상 이사회에 포함되도록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고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했다. 이는 이사회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 필요하고도 당연한 정책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대기업들에 2001년부터 사외이사 비율을 50%이상으로 늘리고 감사위원회 설치를 강제한 것은 지나친 규제이며 득보다 실이 많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사외이사 비율 50%이상 의무화는 경영의 자율성과 효율성 측면을 도외시한 과도하고 획일적인 사전 규제이다. 과도한 사외이사 비율 규제는 해당 기업의 특성에 부합하는 최적의 이사회 구성을 방해하고, 급변하는 환경에 경영전략의 적응적 변신을 어렵게 하며,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는 결과 기업의 경영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물론 기존의 폐쇄적 이사회 구조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사외이사제도 도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와 같은 양 측면을 고려할 때 정부는 대기업에 차별적이며 과도한 규제를 폐지하는 대신에 25% 이상의 사외이사 비율을 상장.등록요건으로 정하고 사외이사 비율이 높은 기업에는 '경영판단 원칙'을 폭넓게 인정해 줌으로써 사외이사제도가 확산, 정착될 수 있도록 정책방향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글로벌 스탠더드'의 관점에서 보아도 사외이사 과반수 규제는 재고되어야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에서 50%이상의 사외이사 선임을 권고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를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우리 정부가 정책적 지향점으로 삼았던 미국의 경우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1964년에 처음으로 2인이상의 사외이사를 두도록 요청하였으며 78년 들어서야 비로소 사외이사만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의 설치를 NYSE 상장요건으로 의무화했을 뿐 과반수 규제는 어디에도 없다. 좀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사외이사 과반수 규제가 얼마나 과도한지 더욱 분명해진다. 영국의 햄펄(Hampel) 보고서(1998년)는 1/6이상, 프랑스의 비노(Vienot) 보고서(1995년)는 2인 이상의 사외이사 선임을 권고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외환 위기이후 경영 투명성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광범위한 개혁을 단행했지만 여기에 대해 PWC나 IMD 등 외국평가기관들은 여전히 비판적이거나 오히려 외환위기 이전 보다 낮은 점수를 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제도개혁의 성과를 낮게 보는 까닭은 주로 회계정보의 신뢰성 결여와 함께 주식시장에 만연된 불공정거래 행위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내부통제구조에 지나치게 간섭하기보다는 주가조작, 내부자거래 등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근절하고 건전한 시장질서의 정착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