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는 지난 1990년초반부터 2000년초까지 10여년동안 장기호황을 구가했다. 이 기간동안 다우지수와 나스닥지수도 10배가량 껑충 뛰었다. 주요 배경은 이른바 "신경제"로 설명된다. 물가가 안정된 상태에서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다보니 기업가치가 높아졌고,이에따라 주가도 몇단계나 상승했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업가치가 높아져도 주식을 살 돈이 적으면 주가상승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 기간동안 미국 주가상승의 동인은 뭐니뭐니해도 뮤추얼펀드다. 미국의 뮤추얼펀드 잔액은 지난 1989년말만해도 1조달러에 그쳤다. 그러나 지난 1999년말 6조8천4백63억달러(펀드수 7천7백91개)로 7배가량 늘었다. 이중 개인이 맡긴 돈이 5조5천억달러로 전체의 81%에 달한다. 미국 전체가구수의 47.4%인 4천8백48만가구가 뮤추얼펀드에 투자하고 있을 정도다. 뮤추얼펀드가 활성화됐기 때문에 장기투자가 활성화될수 있었고,이 덕분에 미국증시의 활황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주식에 직접투자하던 개인들을 뮤추얼펀드로 끌어들였던 주역은 다름아닌 자산운용회사다. "탁월한 분석능력과 적절한 포트폴리오,뛰어난 위험관리"라는 3박자를 바탕으로 자산운용사들은 직접투자이상의 수익률을 투자자에게 안겨줬다. 이러다보니 개인투자자들이 이들 운용사에게 몰렸고,미국증시의 장기투자와 정석투자가 자리잡게 됐다. 뚜렷한 투자철학도 없이 아무 주식이나 채권을 마구잡이로 편입했다가 고객들에게 손실을 전가하곤 했던 국내사정과는 확연히 다르다. 미국 뮤추얼펀드 신화를 일으킨 주역중 하나가 바로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사다. 피델리티는 마젤란펀드 운용으로 "월가의 전설"을 남긴 피터린치가 부회장으로 있는 회사다. 자산운용규모가 1조달러를 넘는 세계 최대의 독립적인 자산운용회사이기도 하다. 피델리티가 내로라하는 투자은행이나 이들 회사가 거느린 운용사를 제치고 자산운용분야의 선두주자로 우뚝선 요인은 크게 세가지로 요약된다. 차별화된 투자분석방법과 철저한 위험관리,고객에 대한 맞춤 서비스가 그것이다. 피델리티의 차별화된 투자분석방법은 개별기업의 가치와 성장성을 중시하는 이른바 "상향식(Bottom-up)방법"으로 요약된다. 그러다보니 심하다 싶을 정도로 기업의 움직임에 집착한다. 자연 투자기간도 장기화됐다. 이를위해 보스톤 뉴욕 런던 도쿄 홍콩에 4백여명의 전문가들을 배치,투자기업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다. 작년 세계 6천여명의 재무담당 이사를 대상으로 피델리티의 기업에 대한 연구분석 성과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22개 분야중 14개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다. 철저한 위험관리 시스템도 피델리티의 특징이다. 피델리티는 펀드매니저의 자의적인 투자를 절대 금지시키고 있다. 대신 섹터별 지역별 애널리스트가 구성한 포트폴리오를 준수하게 한다. 이를 어기는 펀드매니저가 나타날 경우 그동안의 성과에 관계없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한다. 한마디로 "팀플레이"와 그를 감시하는 "컴플라이언스"가 어우러져 있다. 간판급 펀드매니저에게 거의 모든 펀드운용을 맡겨놓고 있는 국내 운용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맞춤서비스도 빼놓을수 없다. 이들은 고객과 접촉,고객이 원하는 포트폴리오를 제시한다. 수시로 이들을 방문,운용내역과 앞으로의 전망을 설명한다. 그러다보니 펀드원금을 손해봐도 항의하는 투자자가 드물다. 원금손실에 대한 책임을 두고 "네탓이오"공방을 벌이는 국내 운용사와는 비교가 안된다. 결국 장기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간접투자를 책임지고 있는 투신운용사와 자산운용사의 실력향상이 필수적이다. 이들이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만 간접투자가 활성화되고,그래야만 장기투자가 정착될 수 있다. 하영춘 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