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반등 시점에서 호재가 어우러졌다. 최근 이어진 '재료 빈사' 상태에서 찾아온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분주한 매수 주문이 이어졌다. 종합지수는 최근 한달여중 최고 상승률을 기록하며 단박에 5일 이동평균선 위로 올라섰다. 반발매수세가 540선 아래에서는 대기하고 있다는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다만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경기침체와 하이닉스 우려가 여전히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고 이날 재료가 시세 연속성을 담보한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4일 반등에는 여러 가닥의 재료가 기여했다. 단기 낙폭 과대에 따른 저가매수세가 형성된 데다 △대우차 매각 타결 임박, △휴렛팩커드(HP)의 컴팩 인수, △SSB의 하이닉스 긍정적 평가, △닛케이 지수 등 해외지수 강세, △전저점인 520선 지지력에 대한 신뢰감, △국민연금 600억원 투입 등이 가세했다. ◆ 'HP효과' 지속성 = 이날 국내외 증시의 급등을 이끌어낸 주역은 HP였다. HP가 260억달러에 컴팩을 인수키로 했다는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지면서 보합권에 머물던 주가를 가파르게 밀어올렸다. 나스닥지수 선물은 약세에서 돌변, 30포인트 이상 치솟았다. 일본 닛케이 지수는 엿새만에 오름세를 나타내며 3.49% 급등, 10,700선을 회복했다. HP와의 밀접한 관계에 따라 최대 수혜주로 거론된 삼보컴퓨터가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은 것을 비롯, 아남반도체, 하이닉스 등이 잇따라 상한가에 올라섰다. 삼성전자는 이레만에 오름세를 보이며 4% 이상 급등, 20만원선에 바짝 다가섰다. 세계적인 PC업체의 인수합병 등은 IT산업의 구조조정 신호탄으로 해석되면서 경기 바닥이 도래했다는 인식으로 확산됐다. HP효과는 그러나 국내 산업에 직접적인 영향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D램 구매업체의 가격 결정권이 커진다는 측면에서 삼성전자 등 반도체 업체에는 단기 악재로 꼽힌다. LG투자증권 구희진 연구위원은 "삼성전자의 경우 업계 1위인 델의 비중이 큰 만큼 HP가 D램 업계의 최고 고객으로 등장하면 당장 영업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부담스럽다"고 분석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IT산업과 연관해서 판단하면 호재로 해석될 수 있겠으나 일부 PC업체를 제외하고는 '굿뉴스'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 진념 부총리의 입 = 해외에서 호재가 날아든 얼마후 국내에서는 구조조정과 관련된 진념 부총리의 발언이 반등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이날 진념 부총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우차 협상은 거의 가닥을 잡은 상황"이며 "채권단이 결정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 내용 자체는 새로울 게 못됐지만 전반적인 시장 분위기와 맞물려 대우차 및 GM관련주에 매수세가 몰렸다. 또 지난 21일 진 부총리가 "현대투신 외자유치가 이르면 오늘중 발표될 것"이라고 말한 이틀 뒤 AIG와의 양해각서(MOU)가 체결됐던 학습효과도 적지 않게 나타났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현대투신에 이어 대우차를 양보하고 하이닉스 건을 해결하려고 한다는 다소 황당한 풍문도 돌았다. 3대 현안 중 하나인 대우차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점은 일단 긍정적이다. 구조조정은 그러나 AIG에서 뼈저리게 겪고 있듯이 타결 자체보다는 과정과 결과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얼마나 효력이 지속될 지 지켜볼 일이다. 진 부총리는 또 "하이닉스 반도체의 경우 시장원리에 따라 처리하겠다는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하이닉스 재정주간사인 살로먼 스미스미스 바니(SSB)가 영업경쟁력이 경쟁사인 마이크론테크놀러지보다 높다고 평가한 사실이 알려졌다. 동원경제연구소 김성인 연구원은 "하이닉스의 실적이나 재무구조를 감안했을 때 마이크론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SSB의 평가 모델의 의문을 제기하면서 "SSB조차도 이번 신규자금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덧붙였다. 하이닉스 채권단은 오는 5,6일쯤 회의를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출자 전환이든 법정 관리든 당분간은 시원스러운 해결점을 찾긴 힘들어 보인다. 결국 열쇠는 반도체 경기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 기회 포착 = 수요일 증시의 최대 관심은 HP효과를 뉴욕 증시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와 일정 부분 선반영한 국내 증시의 반응 여부다. 일단 나스닥선물 움직임에 비추어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에서는 또 구매관리자협회(NAPM)지수가 나온다. 지난주 시카고 구매관리자 지수에 이어 개선되리란 기대도 강하다. NAPM지수는 그러나 소폭 개선은 가능하겠지만 지난해 8월 이후 13개월째 50을 밑돌며 경기 회복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를 뒤로 미룰 것으로 관측된다. 국내에서는 전경련의 9월 경기실사지수(BSI)는 두달 연속 100 이하를 밑돌며 기업 체감경기가 부진한 것으로 나타냈다. 지난 2일 대한상의가 발표한 4/4분기 BSI역시 86으로 급락했다. 국내외 경기 침체 우려가 짙어지면서 4/4분기 경기회복 기대감은 이미 사라졌고 내년 이후에나 가능하리란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대우증권 이종우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증시의 흐름은 박스권 윗부분에선 여지없이 경기문제에 봉착하는 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펀더멘탈에 변화가 없는 데다 삼성전자가 20만원대에 근접하는 등 추가 상승 여력이 크지 않아 보이는 만큼 보수적인 전략을 유지하고 현금 비중을 확대할 기회로 삼을 것"을 당부했다. 한경닷컴 유용석기자 ja-j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