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유동성을 다시 짓눌렀다. 풍부한 시중자금을 배경으로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던 유동성 장세에 대한 기대감이 미국에서 날아든 경기 둔화 우려감에 씻겨 내렸다. 수요일 뉴욕증시 주요 지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베이지북이 발표되면서 추락했다. 베이지북은 FRB가 금리정책에 참고하기 위해 작성하는 분석자료. 경기 부진이 소비까지 전 부문으로 확산,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됐다. 올들어 7번째 금리인하 가능성과 연결지어 호재로 해석될 법도 했다. 그러나 금리인하는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진 터라 매수세를 자극하지 못했다. 나스닥지수는 열흘만에 2,000선 아래로 떨어졌고 아시아 증시는 나란히 급락했다.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3.36% 급락했고 홍콩과 대만 증시도 각각 2.02%와 1.45% 내렸다. 국내 종합주가지수는 2.87% 하락, 550선을 내주며 지난달 말 수준으로 복귀했다. 콜금리 인하 호재도 기력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여기에 8월물 옵션 만기를 맞은 변동성 확대 우려감이 적극적인 가담을 더욱 주저케했다. ◆ 소비, 무너지나 = 목요일 뉴욕에서는 7월 소매점 판매가 나온다. 미국 소비가 흔들리고 있다는 베이지북의 진단이 확인될 지 주목된다. 이밖에 신규 실업수당 신청자 수, 7월 수출입물가 등이 발표된다. 지난주 메릴린치의 투자등급 상향으로 촉발된 반도체 경기 회복 기대감은 반도체산업협회와 살로먼 스미스바니, 리만 브라더스를 거쳐 일단 괄호를 닫은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조사회사인 데이터퀘스트는 8일 올해 반도체시장 전체 매출이 1,681억달러로 지난해 보다 25.8%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 매출 하락률 전망치 17%를 대폭 하향조정한 것. 또 IDC는 PC 수요 감소가 지속되면서 올해 세계 PC용 반도체 매출이 380억달러로 지난해 보다 24%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오는 2005년까지 PC용 반도체 매출이 회복세를 맞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다소 암울한 전망도 덧붙였다. 이에 따라 뉴욕 증시는 기술주가 하향압력에 시달리는 가운데 뚜렷한 모멘텀 없이 박스권에서 등락할 전망이다. 3/4분기도 절반 눈앞에 앞둔 시점에서 4/4분기 추세 전환은 물 건너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반면 관심이 내년 1/4분기로 옮겨가면서 경기 회복 기대감이 형성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 지지력과 복원력 = 주말을 앞둔 금요일 국내 증시에서는 그간 다져온 20일선에 대한 지지력 테스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위축된 심리를 되돌릴 만한 대형 재료가 나타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금리인하가 현실화됨에 따라 유동성 보강에 대한 기대감 등이 다시 부각되며 기술적 반등도 기대된다. 더욱이 이날 급락하면서 장을 마침에 따라 반발 매수세 유입이 기대된다. 마감 동시호가에서 600억원에 가까운 프로그램 매물이 집중됐지만 예상대로 옵션 만기 충격은 크지 않았고 단발에 그쳤다. 동시 호가에서 낙폭을 키운 지수관련 대형주가 복원력을 발휘하며 시가를 끌어올릴 지도 관심이다. 정부가 공공지출 확대, IT기업 지원, 부채비율 규제 완화 등 잇따라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을 표명한데 호응, 한국은행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지난 99년 5월 이후 처음으로 두 달 연속 콜금리를 내렸다. 정부와 한은의 경기부양을 위한 공조체제는 적어도 내수를 유지하는 밑바탕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 건설, 증권 등 '대중주'와 수혜주로 거론되는 백화점 등 내수관련 종목이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분간 반도체, 통신주 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AIG의 현대투신 인수, GM의 대우차 인수도 막바지에 다다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현대증권, 대우차판매, 대우전자, 쌍용차, 오리온전기 등 구조조정 관련 종목에 눈을 떼선 안되겠다. 금요일 증시는 아래로 넓어진 반면 반등폭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중주, 내수관련주, 구조조정 수혜주 등으로 시야를 좁히고 빠른 순환매를 염두에 둔 단기매매가 바람직해 보인다. 한경닷컴 유용석기자 ja-j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