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550대 윗변 박스권' 예상을 깼다. 수요일 외국인은 느닷없이 삼성전자를 1,500억원 대거 매집했다. 며칠째 순매수를 이어오긴 했지만 규모가 달랐다. 주가는 한달음에 560대로 치올랐다. 이날 외국인 공세는 수수께끼였다. 전날 뉴욕 증시 강세가 크지 않았던 데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고작 0.05% 올랐다. 장 종료 뒤에 대형 호재가 터진 것도 아니었다. 같은 해외 요인을 받았지만 일본과 대만 증시는 각각 0.03%, 0.83% 상승에 그쳤다. 의견이 분분했다. 현대투신·대우차 등 구조조정 가속화, 국가신용등급 향상 가능성, 일본 증시 및 환율 안정, 경기 바닥에 대한 공감대 확산 등 재료가 다 거론됐다. 그러나 딱 떨어지는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해답은 뉴욕에서 나온 듯 하다. 국내 증시 종료 몇 시간 뒤 메릴린치가 19개 반도체 및 반도체 장비업체의 투자등급을 상향조정한 것. 시장 한켠에서는 메릴린치 보고서가 현지보다 앞서 반영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테면 한국 비중이 높은 일부 펀드에서 감을 잡고 선취매에 나섰던 게 아니냐는 얘기. 메릴린치의 투자등급 상향 재료가 노출된 목요일 증시에서 외국인은 전날과 판이한 행보를 보였다. 거래소 순매수 기조는 유지했다. 그러나 뉴욕 반도체주의 5% 이상 급등세에 동조하지 았다. 삼성전자 매수 규모를 260억원으로 급격히 줄였다. 하이닉스는 나흘만에 순매도했다. ◆ 반도체, 바닥 이후가 = 세계 증시는 목요일 메릴린치 증권을 주목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와 대만 가권지수는 반도체 강세에 힘입어 각각 3.68%와 3.12% 급등했다. 메릴린치는 11개 반도체와 8개 장비업체의 투자등급을 중기매수로 상향했다.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났다며 반도체주는 이르면 6개월, 늦어도 1년 이내에 시장수익률을 상회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유보적인 언급도 덧댔다. 과잉생산과 가격압력이 여전하다며 반도체산업 가동률은 내년 하반기 전에는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수익은 내년 1/4분기에도 여전히 저조하리라고 우려했다. 한편 통신용반도체업체와 인텔, AMD는 상향조정에서 제외했다. 세계 반도체 경기가 7월이나 8월에는 바닥에 도달한다는 전망은 일단 힘을 얻었다. 더 이상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이제 관심은 바닥확인보다는 회복 시기에 모아졌다. 골의 깊이는 6월 세계 반도체 판매 동향에서도 확인됐다. 반도체산업협회(SIA)는 6월 세계 반도체 판매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7%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감소폭은 5월 20%에 비해 심화됐다. SIA는 오는 4/4분기부터 반도체 판매가 서서히 회복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통계이긴 하지만 6월과 7월 반도체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했음을 고려할 때 바닥논란에 참고할 만 하다. LG투자증권 반도체담당 구희진 연구위원은 "아직까지 반도체 산업의 펀더멘탈 호전 신호는 발견되지 않는다"며 "윈도우XP 효과 등도 이미 노출된 재료여서 막연한 기대감에 기댄 추가 매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SK증권 전우종 부장은 "하반기를 반도체 경기바닥으로 판단, 삼성전자 비중 확대시기로 삼았지만 최근 급등으로 부담스러운 수준에 올라 현가격대에서 추격매수를 권하진 않고 있다"며 "업황 개선 등을 확인하고 투자에 임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반도체가 회복돼도 = 국내외 경기에 드리운 암울한 전망은 여전하다. 기대감을 채워 줄 뚜렷한 신호가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 종합지수 상승 탄력은 그래서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현장세가 기본적으로 경기장세인 만큼 전체를 이끌 힘은 결국 경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논리다. 기술적 반등이 마무리되면 결국은 경기 문제 봉착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는 7월 수출이 사상 최대인 20% 감소율을 보였다는 실질지표와 더불어 체감지표인 전경련의 8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6개월만에 100을 하회했다. 미국에서는 7월 소비자신뢰지수 악화에 이어 구매관리자협회(NAPM) 지수가 43.6으로 나와 12개월째 50을 밑돌았다. 이에 수요일 다우지수는 약세권에서 나스닥상승을 지켜봤다. 아울러 미국 기업 수익이 오는 4/4분기에도 본격적인 회복세를 나타내진 못할 것으로 전망됐다. 톰슨 파이낸셜/퍼스트콜은 S&P 500 지수 편입 종목의 이번 분기 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12% 줄고 4분기에도 0.4% 증가하는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4분기 수익이 뚜렷한 증가세로 돌아선다는 두 달 전 전망을 수정한 것. 톰슨 파이낸셜/퍼스트콜은 실적발표 시즌에 앞서 지난 6월 말 S&P 500 종목의 3분기와 4분기 수익 증가율을 각각 마이너스 6.0%와 5.7%로 예상했었다. ◆ 박스권에 충실 = 추세 전환을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이 다수를 형성하고 있지만 하방경직성이 한결 강화되고 박스권 하단부가 다소 높아지지 않겠냐는 데는 이견이愎?듯 하다. 주가가 사흘 내리 오르면서 상승 추세로의 전환을 점치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올들어 두차례 찾아온 1월, 4월 랠리와 접점을 찾으며 장마가 끝난 무더위와 함께 여름 랠리가 일거라는 다소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금요일 증시는 그러나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뉴욕 증시에서는 전날 장에 반영되지 않은 SIA의 6월 반도체 판매 급감 소식이 메릴린치 효과를 상쇄할 가능성이 있다. 다른 요인으로는 공장 주문과 신규 실업수당 신청자 수가 나온다. 또 주변 여건이 두 번의 랠리와는 차이를 드러내고 있는 데다 경기회복 신호 등 펀더멘탈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수급만으로 버티는 기술적 반등 국면이 마무리되고 있다는 분석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통신주에서 시작해서 반도체를 거쳐 금융주로 옮아온 외국인이 얼마나 연속성에 확신을 갖고 투자에 임하고 있는 지 의문이다. 지난 랠리에서처럼 외국인 매수가 지속된다는 관측도 있지만 외국인은 아직까지는 발빠른 단기 매매에 치중하고 있다. 대우증권 이종우 투자전략팀장은 "은행주에 호재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날 강세는 매수 종목이 제한적인 외국인의 순환매성 매수 유입에 기인한 바 크다"며 "삼성전자가 20만원을 돌파하지 못하고 꺾인 데에서 드러났 듯 기술주 가격메리트가 사라진 만큼 외국인의 대량 매수 공세도 막바지에 다다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한경닷컴 유용석기자 ja-j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