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의 움직임이 게릴라와 흡사하다. 불과 며칠 전까지 "벌떼"처럼 달려들어 주가를 띄워 놓는가 하면 며칠 지난 뒤에는 안면몰수하고 팔아치우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타깃이 된 종목들은 외국인들의 장단에 주가가 춤을 추고 있다. 외국인은 반도체와 통신 등 IT(정보기술)주와 은행 증권 등 금융주 사이를 오가며 시장을 맘껏 주무르고 있다. 7월 수출 34년만에 최악, 8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큰폭 하락 반전 등 악재가 나와도 모른척 한다. 이 때문에 증권가에는 요즘 외국인들의 매매 패턴과 속내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얘기가 나돈다. ◇ 움직임이 빨라졌다 =지난 1일 외국인들은 전체 순매수 금액의 65% 가량인 1천5백47억원을 삼성전자에 쏟았었다. 그러나 2일에는 태도가 돌변했다. 삼성전자에 대한 매수 기조는 이어갔지만 규모가 2백69억원으로 급격히 줄었다. 또 전날까지 사흘째 순매수했던 하이닉스반도체 주식을 1백2억원어치나 팔아 순매도 1위 종목에 올려 놓았다. 관심을 반도체주에서 우량 금융주로 돌렸기 때문이다. 이날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국민은행(4백44억원)이었다. 삼성증권 주식을 1백76억원어치 순매수한데 비해 전날 순매수 2위였던 SK텔레콤(3백31억원)은 1백67억원의 매수 우위에 그쳤다. 전날 미국 증시의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5.96% 급등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외국인이 반도체주를 대량 매수했던 날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0.04% 오르는데 그쳤다. ◇ 헤지펀드 개입 가능성은 =일부 전문가들은 작년 12월 중순부터 삼성전자 주식이 특정 외국계 증권사 창구를 통해 대량 거래됐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UBS워버그 창구를 통해 작년 12월 중순부터 지난 3월 하순까지는 대체로 매수, 3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는 매도, 7월 중순 이후에는 매수 기조를 보였다. 최근 10만주 이상 매수한 적이 많았고 특히 '반도체 반란'이 일어난 전날은 30만주나 매수했다. 교보증권 임송학 팀장은 "3개월 단위로 매매 패턴이 바뀌었다는 것은 헤지펀드 개입 가능성도 유추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임 팀장은 "최근 외국인들의 투자패턴이 빨라져 흐름을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다"면서 "일부 외국인들은 단기 차익을 노려 저점에서 사고 고점에서 팔거나 선물과 현물을 연계시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전문가 시각은 =일부 헤지펀드나 투기성 세력의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지난 6∼7월의 하락장에서 현금 비중을 높인 외국인들이 가격 메리트가 발생하자 다시 매수에 나서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현대증권 정태욱 이사는 "외국인들은 지난 6월부터 7월 초까지 삼성전자와 SK텔레콤 등 핵심 블루칩을 중심으로 1조원어치 가량을 순매도하면서 현금을 많이 확보했다"면서 "최근 이들 종목의 낙폭과대로 저가 메리트가 생긴데다 반도체 업황 낙관론이 겹쳐 대량 매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이남우 상무는 "외국인들이 자신있게 주식을 사는 것 같지는 않다"면서 "지수가 510선까지 추락한 뒤 급반등하자 바닥권에서 매수하기(bottom fishing) 위해 급하게 추격 매수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