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내 자금이탈이 심상치 않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빨라지고 있어 주목된다. 이달 들어 일본 투자자를 상대로 엔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는 사무라이 본드 시장에서 외국기업과 정부는 약 2천5백억엔 규모의 자금을 조달했다. 초저금리에다 조금이라도 더 높은 이자를 받고 싶어하는 일본 투자자들이 외국정부와 기업들이 발행한 채권 매입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시장에서 빠져 나간 외국계 자금규모도 이달 들어 약 1조엔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경제가 장기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다 다음달로 예정된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인 입지를 의식한 고이즈미 내각이 구조조정의 속도를 늦추고 있는 것에 따른 실망감에서 비롯된다. 일본내 자금이탈로 고이즈미 내각 출범 이후 안정세를 찾았던 일본 금융시장이 다시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주말 엔화 가치가 달러당 1백24엔대로 떨어지고 국채수익률(10년 만기)도 1.1%대까지 떨어졌다. 한때 1만4천엔대까지 회복했던 닛케이 평균주가도 다시 1만2천엔대까지 하락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최근의 엔화 자금과 일본에 투자한 외국계 자금의 이탈을 막을 수 있는 유인(誘因)은 현재 일본이 처한 모든 여건을 감안할 때 거의 없는 상태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예측기관들은 앞으로 2년간 일본경제가 제로성장세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주 7대 부문에 결쳐 개혁을 천명한 구조조정 문제도 과연 일본정부 의도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이미 제로수준으로 떨어진 금리와 국민소득(GDP)의 1백32%에 달한 국가채무로 경기부양 수단도 무력화 단계에 놓여 있다. 더욱이 오는 9월부터는 일본 금융기관들이 보유한 유가증권의 평가손을 그대로 반영하는 시가 회계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다. 만약 그때까지 주식과 채권가격이 회복되지 못할 경우 일본 금융기관들은 부실채권이 더욱 늘어나면서 건전성이 악화될 소지가 높다. 앞으로 일본내 자금이 계속해서 이탈할 경우 올 하반기에는 일본경제 침체와 이에 따른 파장이 국제금융시장의 최대현안이 될 것으로 확실시된다. 무엇보다 일본경제는 일본내 자금이탈에 따른 역자산 효과로 악순환(일본내 자금이탈→주가하락→민간소비 위축→추가 경기침체→일본내 자금 추가 이탈)이 우려된다. 안행적(雁行的) 경제구조에다 엔화 환율에 천수답(天水畓) 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 등 아시아 경제에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이달 들어 심상치 않은 일본내 자금이탈로 국제외환시장에서는 엔화 가치 폭락설과 함께 한국의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 가치의 동반하락설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세계경기 순환상에 있어서 일본경제가 담당해온 특수한 완충역할을 감안할 때 세계경기와 미국경기의 회복세를 늦추는 효과도 예상된다. 과거 미국과 일본경제가 동반 침체를 보일 경우 세계경기의 하강국면은 평상시보다 약 3개월 정도 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같은 일본경제의 심각성 때문에 막대한 무역수지적자 부담을 안고 있는 미국으로서도 지난주부터 엔화 약세를 용인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다음달에 열릴 서방선진 7개국(G7) 회담에서도 일본경제의 안정화 방안이 최대 안건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내 자금이탈로 반사적인 이익측면에서 국내 증시에 엔화 자금과 일본내 외국계 자금의 유입을 기대하는 시각이 많다. 국내기업들도 낮은 금리로 엔화 자금을 이용할 수 있는 이점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일본 경기와 엔화 가치 향방에 따라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국가다. 비록 외환위기 초기에 비해 일본 금융기관들의 대출규모가 줄어들긴(약 50억달러 정도) 했지만 막상 대출회수에 들어갈 경우 외환수급상의 차질과 원화 가치가 크게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 만큼 우리 정부와 국내기업들은 사전에 충분한 대비책을 세워 놓아야 할 시점이다. 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