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케인즈를 무덤에서 꺼내 미국 경기를 되살린다!

지난 30년 간, 금융시장을 비롯한 시장실패는 정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케인지안 접근은 패러다임의 지위에서 점차 밀려났다.

특히 신자유주의 조류가 국경을 넘어 전성기를 구가한 지난 90년대, 케인지안은 세력을 더 잃어 ''한물간 축''으로 조롱받는 지경에까지 몰렸다. 수요 관리는 금리를 통한 중앙은행의 능숙한 조타(操舵)에 일임하는 게 최선이라고 여겨졌고, 이러한 인식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사례에서 지지기반을 강화했다.

''국란(國亂)에 사량상(思良相)''일까. 케인지안 경제학이 수북한 먼지를 뒤집어쓴 채 다시 마운드에 세워졌다.

부시 행정부가 공약한대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대대적인 감세를 추진하고 있는 것. 부시 행정부는 앞으로 10년 동안 1조6,000억달러의 감세안을 제출했고 의회는 지난 1일 이를 일부 삭감해 처리키로 잠정 합의했다.

금리인하에다 감세까지 더해졌으니, 경제가 기력을 되찾는 건 시간문제라는 기대가 일고 있다. 세금감면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성급한 주장도 나왔다. "소비자가 세율이 하락할 경우 얻을 것으로예상되는 소득을 이미 지출계획에 반영하고 있다"고 로렌스 린지 백악관 경제보좌관은 최근 CNNfn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살로먼 스미스 바니는 올해 1,000억달러로 계획된 세금환급이 소비를 자극하면 올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4%까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 비아그라에 시알리스까지? = 금리인하가 앞에서 끌고 세금감면이 뒤에서 밀면서 지난해 말 이후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미 경제를 반등케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그러나 결론부터 꺼내자면 글쎄다. 우선 통화정책 완화는, 케인즈의 말을 빌면, 기업이 과잉투자를 되감는 상황에서는 줄을 미는 것과 마찬가지로 헛수고일 뿐이다. 금리인하 효과를 기대한다는 기업은 있지만 금리도 떨어지는 만큼 과감히 투자해보겠노라는 입장은 찾기 어렵다.

금리인하가 모기지 이자율을 낮춰 주택경기를 활발히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주택경기는 소비지출이라는 큰 범주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 소비자의 지출성향이 탄탄하게 유지되면서 주택은 물론 내구재 수요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소비는 재정정책도 가세한 만큼 마이너스 저축률 및 왕성한 활동을 멈추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소비자는 소득이 줄고 감원과 실업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차츰, 아니면 돌연 알뜰한 살림꾼으로 돌아갈 것이다. 설령 가구당 1,000달러가 환급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미 경제의 최후의 보루인 소비지출이 유지될 지는 기업실적 개선되거나 적어도 나아지리라는 기대가 우세한가에 달려 있다. 퍼스트콜에 따르면 S&P 500 지수 편입 기업 가운데 지난 분기 실적을 발표한 415개 기업의 수익은 5.2% 줄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 23.6% 증가에 비해 급감한 것.

기업실적 관련 전망은 이번 분기와 다음 분기 바닥을 거쳐 오는 4/4분기부터는 개선되리라는 쪽으로 모아져 있다. 그러나 이를 전제로 하더라도, 소비자가 두 분기 동안 형편이 나빠지는데도 불구하고 호시절 씀씀이를 계속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물론 소비지출이 감소할 경우 4/4분기 실적개선 전제도 무위로 돌아간다.

게다가 미 공화당이 추진하는 세금감면은 케인지안 해법이 아닌데다 ''아니한만'' 못한 정책이다. 세금감면이 소비자의 기대를 부추기는 효과는 예상되지만 실제로는 걷은 세금으로 도로를 내거나 학교를 짓는 편이 ''누수(漏水)없이'' 수요를 견인하기 때문이다. 케인즈가 수요가 생산활동을 보장하지 못할 때 쓰라고 권고한 방안은 재정지출을 늘리는 것이지 줄이는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감세정책이 결코 ''시알리스''가 될 수 없다고 지적받는 또다른 이유다.

공화당은 지난 80년대에도 세금감면을 월스트리트 저널과 함께 래퍼곡선으로 치장, 레이거노믹스라는 이름으로 실전에 투입했었다. 별무효과였다.

◆ 변동폭 커질 듯 = 이번주 국내 증시는 월요일 미 경제성장률 호전 소식에 급등한 뒤 금요일까지 나흘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화요일 이후에는 지수 580∼600에 형성된 두터운 매물벽을 거슬러올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사흘간 종합지수는 7.24포인트, 소폭 상승했지만 프로그램 매도 등 물량을 활발히 소화해내면서 추가상승을 점치게 했다.

그러나 최근 3주 동안 인텔, 금리인하, 성장률 등 뉴욕 요인을 빼면 남는 게 없는 것도 사실이다. 종합주가지수는 지난달 17일 513.97에서 금요일에는 585.60으로 뛰어올랐다. 이 가운데 인텔이 26포인트, 기습 금리인하가 23포인트, 성장률은 20포인트를 차지했다.

다음주는 10일 옵션만기일 등을 맞아 증시가 박스권을 이탈할 전망이다. 금요일 현재 매수차익거래 잔고는 3,100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달 만기일에는 2,831억원이었다.

화요일에는 금융통화위원회가 열린다. 물가불안과 그 요인인 환율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임을 고려할 때 한은이 콜금리를 내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환율도 장을 출렁이게 할 요인으로 꼽힌다. 달러/원 환율은 최근 121엔대 강세를 기록하며 고이즈미 신임 총리의 경제개혁정책에 성원을 보냈다. 일본 정부는 월요일 경제대책을 내놓는다. 저울의 양쪽에 놓인 미국의 경기둔화 완화와 일본 경기부양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무게가 실릴 지 지켜볼 따름이다.

미국에서는 금요일 실업률 등 고용지표에 이어 다음주에는 8일 1/4분기 생산성, 3월 도매재고 등이 나오고 11일에는 생산자물가와 소매판매가 발표된다.

시스코는 8일 장 종료 뒤 지난달까지 분기실적을 내놓는다. 대표적인 기술주인데다 다른 기업과 달리 지난달 실적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시스코의 성적은 뉴욕증시에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스코 CEO 존 체임버스는 최근 경기를 100년만에 있을까 말까 한 대홍수로 비유한 바 있다.

한경닷컴 백우진기자 chum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