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정보기술) 산업의 경우 각 분야가 서로 연관되어 있고 의외로 기술장벽이 높지 않아 마음만 먹으면 이 분야에서 저 분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최근 인터넷서비스 사업에서 솔루션사업으로 방향을 바꾼 A업체 B사장의 말이다.

실제로 비교적 유망하다고 알려진 CRM(고객관계관리) ASP(응용소프트웨어 임대) 셋톱박스 웹에이전시 등의 분야에는 신생업체는 물론 기존업체들이 사업 아이템을 바꿔 속속 뛰어들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IT 벤처업계에는 당장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분야라면 일단 발을 담그고 보자는 전략이 확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벤처기업이 한 분야에 주력하지 못하고 ''e비즈니스 전문업체''라며 종합회사를 표방하는 경우도 많다.

◇ 시장은 좁고 업체는 많다 =인터넷시대의 ''황금산업''으로 부상한 정보보호산업의 경우 시장규모는 올해 1천억원.

그러나 참여업체는 2백개가 넘는다.

업체당 기껏해야 평균 5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위성방송 수신과 디지털TV 인터넷TV 등에 쓰이는 셋톱박스 시장에도 4백여개 업체가 난립해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도 않은 위성방송용 셋톱박스의 경우 최근 1년동안에만 70여개 업체가 생겨났다.

장비를 사가는 고객은 아직 없는데 제조업체만 늘고 있는 셈이다.

작년말부터 급부상하고 있는 CRM분야 역시 업체들의 난립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e메일 솔루션업체나 B2B 솔루션 업체,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관련 업체들이 모두 CRM 전문업체를 표방하고 나섬에 따라 CRM의 개념조차 업계에서 제대로 정립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야 차세대 사업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EIP(기업정보포털) 역시 아직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40여개 기업이 시장진입을 준비중이다.

◇ 과당경쟁으로 인한 악순환 =ADSL 장비는 시장이 무르익기 시작한 작년초만해도 회선당 가격이 1백만원대에 달했으나 올해들어 회선당 10만원대로 폭락했다.

한국통신이 최근 실시한 60만회선 규모의 ADSL 장비 입찰의 경우 삼성전자가 단독으로 공급권을 따냈는데 당시 삼성이 써낸 공급가격은 회선당 15만원선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초고속인터넷 분야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국통신 하나로통신 두루넷 드림라인 온세통신 데이콤 SK텔레콤 등 규모를 갖춘 업체만도 10여개에 달한다.

보통 초고속인터넷사업이 손익분기점을 넘어서려면 투자후 최소한 2∼3년은 지나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가입자당 1백만∼1백50만원에 달하는 투자비를 회수하려면 월 이용료 2만9천원을 꼬박꼬박 거둬들여야 하기 때문.

그런데도 최근 업체들간에는 가입설치비 면제나 이용요금 감면, 사은품 제공 등 판촉경쟁을 벌이고 있다.

결국 자금력이 뒷받침되는 몇몇 대기업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에 허덕이다 정리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최근 1∼2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한 NI(네트워크 통합) 분야도 ''돈되는 장사''라는 얘기가 나돌면서 기존 SI(시스템통합) 업체들이 너도나도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경기침체로 기업들이 인프라 투자를 줄이면서 가장 먼저 타격을 입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입찰이 진행될 때마다 공급 업체들간 출혈덤핑이 속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과당경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업계에서는 자사 IDC에 입주하면 몇개월간 이용료를 받지 않겠다며 경쟁사 고객을 빼가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수익성이 악화돼 결국 사업을 접은 업체도 나오고 있다.

김태완.정종태.김남국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