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사진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 필름 업체 이스트만 코닥은 지난 17일 분기수익이 전년 동기보다 48% 격감했다며 3,500명 감원계획을 발표했다.

또 불확실성으로 인해 올해 실적을 내다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실적이 개선될 기미를 찾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이같이 돌려 표현했다.

엿새 뒤인 지난 23일 뉴욕. 코닥의 CEO 다니엘 카프는 디지털 카메라 ''이지쉐어'' 발표장에서 "세계 다른 지역이 미국 경기둔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우는 상상할 수 없다"며 유럽지역 수요에서 이미 충격을 감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영국에서는 구제역으로 인해 수요 위축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영국은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농촌지역 관광을 제한하고 있는 바, 이 조치가 관광객의 사진 촬영을 줄어들게 하리라는 설명이었다.

경기가 침체국면에 접어들면서 바스락 소리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움츠러드는 심리를 엿보게 하는 삽화다.

반대로 경기회복에 대한 열망도 더욱 조급하고 강렬해지고 있다. 시장은 또 이전보다 한 단계 높은 자극을 요구하고 있다.

뉴욕증시 투자자들은 급감한 수익이 애널리스트 전망치 평균을 1센트 웃돌았다는 데 환호했고 경제지표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마저 어려울 땐 다른 가능성을 찾는다.

24일 뉴욕증시에서는 민간 연구소 컨퍼런스 보드의 4월 소비자신뢰지수가 109.2로 4년여중 최저로 떨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주요 지수는 한동안 가파르게 치달았다. 소비자신뢰지수가 악화된 만큼 다음 금리인하도 큰 폭 단행되리라는 관측이 퍼진 것.

뉴욕증시는 지난달 27일 3월 소비자신뢰지수가 117로 잠정 집계, 호전됐다는 ''좋은 소식''이 전해졌을 때에는 금리인하가 멀어졌다는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 심리전, 전면전으로 확대 = 데이비드 드레먼은 ''주식투자는 심리전쟁''에서 증시는 참여자들의 집단심리가 작용과 반작용을 거치며 치솟았다가 주저앉는다고 설명했다.

증시 급등은 사회전체의 의지가 별안간 하나의 문제에 집중되고 수백만의 사람들이 동시에 하나의 착각에 빠져 이를 추구해나가면서 비롯된다는 것. 한 장의 종이조각에 운명을 거는 투자자가 세력을 키워나간다.

이 과정에서 서서히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사람이 한 사람씩 생기며 거품이 걷히게 된다. 반작용이 휘몰아쳐 군중은 극단의 공황에 빠진다. 매도가 봇물을 이루면서 신중함도 이성도 사라져 버린다. 드레먼은 상승기에 투자가치가 과대평가된 것처럼 하락장에서는 가치가 무시된다고 지적했다.

현 단계는 상승론자와 하락론자가 논리를 총동원, 전선을 확장하며 한 치도 물러섬 없이 팽팽히 겨루고 있는 국면으로 이해된다. 미국 경기사이클에서부터 연말 주가지수, 그리고 영역을 좁혀 반도체경기에 이르기까지 공방이 누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

호르스트 쾰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세계경제가 심각한 상황에 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효과적인 통화정책 등에 힘입어 올 하반기부터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모건 스탠리 딘 위터의 스티븐 로치는 이에 앞서 경기가 이번 분기부터 침체에 빠져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증시와 관련, 영국 경제학자 마커스 밀러는 그린스펀이 그의 초인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려 할 경우 S&P 500 지수가 일시에 붕괴, 750까지 주저앉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초인적인 그린스펀도 경제를 회생시킬 수 없다는 ''신뢰의 붕괴''가 빚어질 경우 증시가 일거에 무너지게 된다는 말이다. 반면 골드만 삭스의 수석투자전략가 조지프 애비 코언은 최근까지 S&P 500 지수의 연말 목표가를 1,650으로 예상했다.

반도체에서는 살로먼 스미스 바니의 조너선 조지프와 메릴 린치의 조 오샤가 맞서고 있다. 조 오샤는 24일자 보고서에서 지금 반도체주를 사면 저점에 이르기까지 40% 손실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공세를 폈다.

◆ 패러다임 쉬프트 = 증시가 심리전쟁이라면 장세는 논리싸움에서 이겨 더 많은 투자자를 끌어모은 편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러나 증시는 심리전이란 요소 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증시를 둘러싼 ''최종 심급''에는 기업 수익, 그리고 기업 수익의 밑그림인 거시경제의 흐름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 각국 증시 및 경제는 최근 수년 동안 ''신경제'' 거품을 내며 기세좋게 성장했다. 시세가 시세를 불렀고, 시세는 영업외 투자수익을 보장하며 급등주를 마치 수익성이 높은 것처럼 분식했다. 수익성이 희박한 사업이 우후죽순처럼 솟아났고 다른 많은 기업이 이에 힘입어 영업이익을 올렸다.

열풍에 대한 의구심은 꿈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불현듯 떠오르는 건 아니다. 투자열기는 제 스스로 반전의 계기를 키워나간다. 낙관적인 전망이 경제주체를 압도하면서 많은 업체들이 엘도라도를 찾아 먼바다로 모험을 떠난다. 일정 기간 항해할 식량과 연료는 확인되지 않은 지도 한 장이면 쉽게 조달됐다.

충분한 시일이 지나 무모한 항해를 떠났던 업체들이 침몰하면서 의문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기존 패러다임이 흔들린다.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관심을 더 끌어모으고 그 관심이 다시 유동성 압박을 강화한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의 말처럼 썰물은 누가 알몸으로 수영하고 있는 지 드러낸다. 실적저조 대열에 합류하는 업체가 늘어난다. 거시경제는 침체로 내리닫고, 증시에는 하향압력이 가중된다.

앨런 그린스펀 FRB의장은 지난해 말 이후 경기둔화를 재고조정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 감축과 대량감원이 끊이지 않고 증시가 약세권에서 요동치면서 소비수요가 위협받고 있는 과정을 단순히 재고조정이라고 치부하는 건 순진하다. 하기야 신경제가 생산성의 비약을 이뤄냈다는 미몽에 몰입, 지난 96년 이후 3년 반 동안 금리를 올리지 않은 그에게 많은 걸 기대하기는 무리인 것도 사실이다.

자연과학에서 이외의 부문에서는 어느 한 패러다임이 결코 스스로 물러서지 않는다. 특히나 지난 10년 동안 호황과 경제성장률을 추월한 급등장세의 관성에 젖은 투자심리와, 앞서 언급한 대로 상승장의 재연에 대한 뜨거운 갈망을 고려할 때, 증시가 붕괴될 확률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 잔 파도를 탈 때 = 증시 격언 가운데 ''잔 파도는 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수면의 출렁임을 오해, 도도한 물밑 흐름을 거스르는 우를 범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말이다.

하락압력에 시달리는 장에서는 그러나 역으로 접근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티끌만한 악재에 급락한 뒤 실낱 같은 재료에 폭등하는 일도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낙폭이 커지고 저가매수 의견이 잦아지면 포트폴리오의 일부를 할애하라. 그러나 항상 단기고점을 염두에 둘 것을 권한다.

그린스펀은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하할 것이다. 지난 92년 하반기 실질금리가 0%에 이를 때까지 내렸던 것처럼. 그러나 틈날 때 마다 정책효과를 높이기 위한 ''건설적인 모호함''(constructive ambiguity)으로 자신의 의도를 감추리라고 예상된다. 예컨대 생산성의 신화를 들며.

금리인하는 하지만 시장참가자 사이에 모럴 해저드를 부추길 위험이 있다. 또 당장은 ''피돌기''를 활발히하며 증시에 에너지를 공급하겠지만 체력을 저하되게 할 우려도 있다. 시장참가자들의 역치가 점점 높아지면서 효과는 떨어지고 불안감이 고조된다.

경기둔화 속에서도 시장점유율을 높이면서 수익호조를 이어갈 기업을 찾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반면 투기자가 아니라면 적어도 경기둔화 시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기업은 피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는 투자자 및 증시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경제가 원활한 구조조정을 통해 증시에 탄탄한 바탕을 제공토록 하기 위한 선택이다.

뉴욕증시의 대다수 기업이 실적전망을 낮춰잡은 뒤 이를 달성했고 일부 기업은 하반기를 긍정적으로 예상했다. 물밑 흐름이 하반기부터 개선될 지, 예의 주시할 일이다. 실적이 바닥을 차오르고 있다는 기대는, 산업활동, 소비자신뢰, 실업률 등 다음 실적시즌 전에 쉼없이 나오는 경제지표를 통해 검증받지 않을 경우, 흔적없이 사라질 것이다. 물론 미국 경제가 이번 분기 바닥론을 입증해나갈 경우 이같은 우려는 잡음으로 기억될 것이다.

한경닷컴 백우진기자 chum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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