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시스코를 눌렀다. 인텔은 화요일 뉴욕증시 장 종료 후 시스코와 정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시스코 시스템즈는 이번 분기 매출이 전분기보다 30% 급감하리라고 예상했다. 반면 인텔은 반도체 경기가 안정궤도에 접어들었으며 하반기에는 지금보다 호전될 것으로 내다봤다.

인텔은 실적발표를 앞두고 약 1% 숨고르기를 한 뒤 시간외매매에서 11.25% 급등했다. 인텔의 긍정적인 전망에 따라 나스닥선물이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나스닥선물이 가격제한폭인 42.00포인트에서 한 포인트도 내려서지 않자 18일 국내 증시는 주저함 없이 한달음에 540에 올라섰다. 일본, 홍콩 등 아시아 주변국가 증시가 강세를 나타내면서 동행했고 환율도 큰 폭 하향안정세를 보였다.

국내 경제 지표도 강세를 뒷받침했다. 어음부도율이 3월 중 0.34%로 전월의 0.31%에 비해 소폭 상승했지만 신설법인 수가 3,647개로 지난해 6월 이후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기대지수는 94.1로 석달 연속 반등 흐름을 보였다.

반도체주가 ''인텔 효과''를 톡톡히 봤다. 증권주와 인터넷주도 급등하며 장세 반등에 대한 기대감을 대변했다. 거래소 증권업종지수는 이날 11.83% 급등했고 새롬, 다음 ,한컴 등 인터넷대표주가 모두 상승 가격제한폭을 채웠다.

포항제철은 예상된 대로 지난 분기 수익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발표한 뒤 약세를 보였지만 결국 상승세에 편승했다. 거래가 지난달 하순 이후 가장 활발, 거래소와 코스닥의 거래량은 각각 4억9,000여만주, 4,억4,000여만주를 기록했다.

◆ 인텔 인사이드 = 인텔은 지난 1/4분기 매출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 적은 67억달러로 집계, 발표하고 수익은 11억달러로 주당 16센트를 냈다고 밝혔다. 수익은 60% 이상 격감했지만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치 14∼15센트를 넘어섰다.

특히 인텔은 보도자료를 통해 "마이크로프로세서 경기가 안정된 듯 하다"며 "향후 (실적이) 정상적인 계절적 양상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한다"고 언급했다. 인텔 CFO 앤디 브라이언트는 로이터 등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분기 끝날 무렵 좋은 조짐이 예상되며 하반기에는 계절적인 강세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텔은 또 설비투자를 당초 예정대로 75억달러 규모로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텔의 전망이 맞아떨어지리라고 믿기에는 이르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S&P의 마크 매튜는 "인텔이 바닥을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 충분한 징후가 없다"고 평가했다.

또 같은 날 실적발표를 한 텍사스 인스트루먼츠는 다음 분기 이후 전망을 내놓지 않은 채 이번 분기에도 실적저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매출이 20% 감소하리라는 것. 장비업체 테러다인도 45% 급감한 수익을 내놓고 "현 시점에서는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인텔과 시스코를 비롯한 다른 업체의 전망은 서로 상충되지 않는 것일 지도 모른다. 우선 시스코와는 업종이 다르다. 또 네트워크 업종이 회복되더라도 시스코는 몰락의 길을 걸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상으로 한 기간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이번 분기에 대해서는 인텔도 썩 낙관하지는 않고 있다. 매출을 62억∼68억달러로 잡아, 이번 분기보다 밑돌 가능성을 더 크게 여기고 있는 것.

요컨대 반도체, 컴퓨터,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등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대부분 업체가 이번 분기조차 장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반기 낙관론은 성급한 것일 수 있다.

◆ 파도타기 장세 = 인텔의 전망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과 일본을 거쳐 대만 홍콩 증시에까지 강세를 몰고왔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4.40% 급등, 1,3641.79를 기록했다. 홍콩 항생지수는 2.91% 올라 2,972.80으로 거래를 마쳤다. 대만은 1.41% 올랐다. 반도체 관련주가 강세를 주도했다.

국내 증시에서는 삼성전자가 7.81% 오르며 21만원대를 회복한 것을 비롯, 현대전자, 아남반도체, 주성엔지니어, 아토, 원익 등이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다.

또 수요일 유럽 증시에도 동반 오름세를 전했다. 국내시각으로 오후 6시 5분 현재 영국 FTSE100지수는 1.36%, 프랑스 CAC40지수는 1.99%, 독일 DAX지수는 2.31% 올랐다. 유럽 장에서도 인피니온 등 반도체가 주역으로 나섰다.

그러나 수요일 뉴욕증시에서 인텔이 일으킨 상승파도가 세력을 잃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장 종료 후 AMD, 브로드컴, KLA-텐코 등 반도체 관련주가 실적을 발표하는 것. 또 IBM과 애플도 대기중이다.

개장 전에는 AOL-타임워너, GM, 질레트, 파이저 등이이 예정돼 있고 이밖에 인터내셔널페이퍼, J.P모건 체이스, 메릴 린치 등도 분기 수익을 내놓는다. 경제지표로는 컨퍼런스 보드의 3월 경기선행지수와 함께 무역수지가 나온다. 미국 경기의 현 위치 및 방향을 가늠하는데는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할 듯 하다.

◆ 오를 때 참여하되... = 증시관계자들은 화요일 뉴욕증시 움직임에 대해 일단 기술적 반등에 접어든 것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경기가 저점에 닿았다는 신호가 약하다는 점에서 추세적 반등을 기대하기는 이르다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LG증권의 박준범 연구원은 "이날 뉴욕지수가 시스코 실적악화 경고에도 불구하고 상승 마감함으로써 어느 정도 실적저조 부담감을 이겨내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스닥지수의 기술적 반등기조가 단기적으로 2,200∼2,300까지 이어지고 종합지수는 이에 따라 550선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후 550선이 지켜지지 못할 경우 다시 하락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증권의 유욱재 연구원은 "뉴욕증시에서 바닥을 확인했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어 미국의 1/4분기 GDP가 발표되는 오는 26일까지는 반등이 예상된다"며 "종합지수 박스권이 기존의 480∼520에서 500∼560으로 상향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스권을 벗어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외국인매수 지속과 국내시장 유동성 확충을 들었다.

현대증권의 오현석연구원은 "뉴욕증시의 상승은 경기호전이나 실적개선이 없는 낙폭과다 환경에 따른 것 "이라며 "기술적 반등에 맞춰 증권 및 은행 등 저가 대중주와 낙폭과대 우량주를 중심으로 매매에 임할 것"을 권했다.

한경닷컴 한정진기자 jj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