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올 연초 증자를 계획한 기업들이 고민에 빠졌다.

한치앞 주가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가운데 기존 주주들이 신주 인수를 기피,당초 예상보다 실권주 규모가 커지고 있는 데다 일반투자자들도 실권주 공모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들은 대규모 실권을 막기 위해 발행가를 낮추고 실권주를 제3자 배정방식을 이용한 ''주고받기''식 거래로 처리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연이은 대량 실권=제은상호신용금고는 지난 3월29일과 30일 이틀간 LG투자증권을 주간사로 실시한 주식 공모에서 일반투자자의 청약 신청이 한 건도 안들어와 공모했던 물량 2백68만주 전량을 실권 처리했다.

제은금고의 공모가는 3천원대인 시가보다 훨씬 높은 5천원(액면가)이었다.

산업용 계측기기 생산업체인 인피트론은 실권을 막기 위해 주당 발행가를 당초 1만4천7백원(액면가 5백원)에서 1만2천1백원으로 대폭 낮췄으나 20.2%(13만4천주)가 실권처리됐다.

장미디어인터렉티브도 전체 청약분 1백35만1천주중 11.9%인 16만1천주의 실권이 발생했다.

인터넷 교육업체인 솔빛미디어도 지난 4일 마감한 구주주 유상증자 청약에서 23.7%(1백66만주)의 실권주가 발생했다.

◇''주고받기''식 유상증자=실권주 발생이 늘어나면서 계열사나 이해관계가 맞는 제3의 기업을 대상으로 제3자 배정방식을 이용한 ''주고받기''식 실권주 처리가 점차 늘고 있다.

제은금고는 실권주 2백68만주 가운데 88만주를 2대주주인 천마물산에 제3자 배정방식으로 넘겨주기로 했다고 지난 6일 공시했다.

나머지 1백80만주는 아예 인수자가 없어 미발행으로 처리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제은금고가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20일 천마물산으로부터 제주시 이도동의 토지 및 건물을 31억원에 매수했던 사실을 들어 계열사간 ''주고받기''식 유상증자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제은금고의 주식담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중심상권이 제주시로 이동함에 따라 미래의 영업권을 확보하기 위한 매입이었다"고 설명했다.

천마물산은 현재 제은금고의 지분 22.3%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증권도 지난해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정보기술의 시장조성에 SK증권이 2백억원의 자금을 투입한 데 대한 ''보상''차원에서 지난 3월 SK증권 유상증자때 실권된 유상증자분(6백37억원)을 전량 인수해줘 눈총을 받았다.

당시 SK증권의 주가는 신주발행가(2천5백원)를 밑도는 가격으로 곤두박질쳤던 때였다.

현대증권 기업금융팀의 관계자는 "당초 SK증권의 증자물량을 총액 인수한 것은 지난해 SK증권이 현대정보기술의 시장조성에서 큰 손실을 본 것에 대한 물물교환(barter)식 거래"라며 "거래관행상 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주가하락으로 증자 자체를 연기하는 경우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증자를 예정대로 강행할 경우 대량실권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 이같은 실권주의 편법처리 사례도 덩달아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