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T(정보기술) 장비 시장은 e비즈니스 확산에 힘입어 매년 20∼30%씩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서버 등 인터넷 인프라 구축장비의 80∼90%가 외국산이다.

10조원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디지털 방송과 차세대 영상이동통신(IMT-2000) 서비스용 장비도 외국산이 차지할게 확실하다.

정부는 핵심장비 국산화를 위한 밑그림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며 국산제품 판로 확보에도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

국내 업체들이 ADSL 제품을 수출할 때 외국 정부가 관세를 매기는 데도 외국산 수입제품에 대해선 무관세 혜택을 주고 있는 관세청의 어이없는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 외국기업 각축장이 된 한국시장 =디지털위성방송 사업자인 한국디지털위성방송(KDB)은 하반기 방송 실시를 앞두고 최근 약 4백억원 규모의 방송시스템 발주계획을 발표했다.

많은 국내 업체들이 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실상은 NDS 에코스타 등 외국업체를 컨소시엄에 끌어들이는 일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디지털방송장비 개발에 손을 든 이후 국내 업체들은 국산화를 포기한 실정이다.

막대한 돈을 들여 개발해 봤자 팔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장비와 중.대형 컴퓨터 시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스토리지 시장은 EMC IBM 등 5개 외국사가 80% 이상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서버와 라우터 스위치 등 장비시장 역시 외국산이 90% 이상에 이른다.

SK텔레콤과 한국통신이 비동기식 IMT-2000 서비스를 하기 위해선 각각 2조∼3조원의 장비 투자가 필요하다.

국내 업체가 아직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이 시장도 외국업체 몫이다.

외국기업이 시장을 독과점하다 보니 판매가격과 유지보수 비용이 정상가보다 비싼 문제점도 생겨나고 있다.

많은 국내 IT기업들은 외국 제품의 단순 유통회사로 전락한 형편이다.

◇ 손놓은 정부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간 기술 격차가 존재하긴 하지만 정부 또한 ''글로벌 이코노미''란 명분 아래 국산화 노력을 등한히 해 외국 기업들이 안방을 차지하도록 만들었다.

정부는 지난 88년 1천2백억원의 연구비를 들여 주전산기 및 대형컴퓨터 서버 등의 국산화를 추진한 이후 이렇다 할 대형 국산화 프로젝트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산화가 되더라도 판로를 도와주는 정책이 부재하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나 공공기관에 설치된 IT 장비도 외산이 주류다.

무역수지 악화의 한 요인이다.

◇ 대책은 없나 =통신이나 방송 신규서비스 시기를 장비 국산화와 연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장비업체 관계자는 "비동기식 IMT-2000 서비스가 당초 계획보다 2∼3년 늦어지더라도 장비 국산화 스케줄과 연계해 실시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자부품연구원 신찬훈 책임연구원은 "안정성과 신뢰성이 중요한 IT장비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은 분야"라며 "정부가 국내 기업이 개발한 제품에 대해서는 품질인증을 거쳐 판로를 열어주며 정부와 공공기관이 앞장서서 국산 장비를 쓰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삼성종합기술원 박승용 상무는 "정부는 원천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기업은 당장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응용기술 개발에 힘쓰는 등 정부와 기업간 역할분담을 하는 것도 국산 IT장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