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이 사시는 부산 동래 본가에는 동양화가 여러 점 걸려 있다.

창고 안에 뽀얗게 먼지 앉은 것들까지 합치면 꽤 많다.

평소 의가 좋으신 두 노인네가 이 그림 얘기만 나오면 어김없이 설전(舌戰)을 벌이신다.

어머님의 변은 이렇다.

"너희 아버지가 약주만 드시면 꼭 그림 한 장씩을 들고 오시곤 했다.

매번 선사 받은 거라 하시길래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전부 돈 주고 사신 거였다.

그 어렵던 시절에 저 그림들만 안 샀어도 고생이 훨씬 덜했을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결국 저 그림들 값만큼 덜 먹고 덜 입은 거다.

그간 이자까지 치자면 굉장한 액수다."

이에 대한 "피고(被告)"의 변은 늘 이렇다.

"솔직히 다 돈 주고 샀다.

그러나 취중에 두서없이 덜컥 산 건 하나도 없다.

전부 작품성이 있는 것들이다.

지금 팔아도 이자는 충분히 건지고 남는다.

두고 보라.

자자손손 큰 재산이 될 기막힌 투자다."

얼마전 김기창 화백의 타계 소식에 평소 아끼시던 산수화를 가리키며 아버님이 말씀하셨다.

"이제 운보(雲甫)가 떠났으니 이 그림 값이 최소 두 배는 또 올라갔다.

위대한 작품은 작가가 타계하면 값이 더 나가는 법이지."

어머님 말씀은 이랬다.

"두배 아니라 절반이라도 돈이 들어와야지."

한 분은 자신의 대차대조표에 "자산의 증가"를 보며 뿌듯해 하시는 반면,한 분은 이미 비용 처리된 항목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씁쓸해 하시는 장면이었다.

최근의 한 클리닉 사례도 결국 그 본질은 우리집 어른들의 "운보그림 논쟁"과 같다.

상세한 스토리는 이렇다.

오래 전에 샀다는 주식 한 종목이 큰 손실이 나 있었다.

그 주식을 왜 샀으며 왜 여태 손절매를 안 하셨나 물었더니 답변인즉 이랬다.

"이 회사 재무상태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보유주식,채권,부동산을 아무리 보수적으로 평가해도 이만저만한 액수는 된다.

그리고 부채라고 해봐야 아무리 부풀려 잡아도 이래저래 겨우 몇 푼이다.

그러니 매출은 전혀 없다 치고 회사 순자산 가치만 따져도 이 주식 시가총액의 최소 두 배다.

살 당시에도 그랬고,지금 평가해 봐도 마찬가지다.

제값의 반(半)도 안 되는데 어떻게 안 살 수 있겠나.

그리고 그런 사실을 알고 어떻게 손절매를 하겠나.

지금 이 주식 가격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될 정도로 터무니없이 낮다.

사람들이 왜 이런 주식을 탐내지 않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이렇게 조언했다.

"그 논리가 통하려면 다음 둘 중 한 가지 일이 벌어져야 한다.

하나는 회사가 보유 자산들을 매각하고 그 돈으로 배당을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회사가 청산을 하고 그 청산가치를 주주들에게 나눠 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런 보장이 없다면 어떻게 그 논리로 투자 수익을 얻겠는가.

그 많은 자산이 단지 그림의 떡이라면 아무 소용 없는 것 아닌가.

여자가 남편 인물 먹고 사는 게 아니다.

인물은 덜해도 돈 벌어 주는 남편,내용은 부족해도 잘 올라가는 주식이 좋다.

이 주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바로 인물만 좋은 남자가 싫은 사람들이다."

회사 내용도 모르고 하는 "묻지마 투자"때문에 개인들이 실패한다고 흔히 말한다.

틀린 말이다.

내용을 잘 아는 "물어 봐 투자"가 더 많이 깨진다.

오로지 남자 인물만 믿고 무작정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 인물이 돈을 벌어 오면 몰라도 안 그러면 평생 그 인물을 반찬삼아 배고프게 산다.

운보의 그림을 재산 증식을 위해 샀는지 보고 즐기자고 샀는지 각자 한 번 잘 따져 볼 때다.

한경머니 자문위원 현대증권 투자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