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가 수출환어음(DA) 매입 한도를 늘려 달라고 요청한 것은 한마디로 회사채 차환발행만으로는 유동성위기를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는 점을 입증한다.

채권단은 현대전자의 요청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 빠르면 10일께 회사채 차환발행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80%를 인수해 주는 것에 더해 사실상 신규자금 지원인 DA한도 증액이 이뤄질 경우 현대전자에 대한 특혜시비가 일 것으로 보인다.

◆ 회사채 차환발행만으론 안된다 =현대전자는 지난해말 3조5천1백90억원을 마련해 차입금을 갚아 나가겠다는 자구계획을 발표했었다.

현대중공업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등을 매각하고 시티은행을 주간사로 1조원 등을 모집하겠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신티케이트론 조달이 8천억원에 그쳐 당초 계획보다 2천억원이 줄어들었다.

지분 매각작업도 아직까지는 현실화되지 못해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전자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신용등급이 하향조정되면서 각 은행의 여신한도가 축소됐다.

한때 최고 15억달러까지 이르던 DA 매입한도는 지난해말 8억달러로 줄어들었다.

반면 현대전자의 총 부채는 11조5천억원대에 이르고 있다.

올해 만기가 되는 자금만 4조3천억원대다.

박종섭 현대전자 사장이 은행 여신담당임원 회의에 직접 참석해 "회사채 차환발행만으로는 어렵다"며 "DA 한도를 예전 수준으로 회복시켜 달라"고 요구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발등에 불인 만기 회사채를 연장하는 한편 수출확대 등을 통해 경영을 정상화하겠다는 복안이다.

◆ 특혜시비 논란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자체가 부실기업을 국민세금으로 도와주고 기업구조조정을 늦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형국에서 현대전자는 ''지난해말에 만기가 됐던 회사채 2천4백억원''도 회사채 신속인수대상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신용등급 하향조정에 따라 각 은행의 여신심사위원회에서 결정했던 DA 한도를 늘려 달라는 ''과감한'' 주문을 했다.

비상시국인 만큼 비상한 대책이 나올 필요는 있다.

금융감독위원회 관계자는 "특정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회사채 시장을 살려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라고 이날 회의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부방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안팎에서 높다.

특히 이번 회사채 인수 대상 기업에 현대전자를 비롯 현대건설 현대상선 현대석유화학 고려산업개발 등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특정그룹을 지원하는 정책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김준현 기자 kim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