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님께.

안녕하십니까?

초면에 실례인 줄 알고 있으나 너무도 답답해서 이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박사님께 좋은 조언을 얻고자 두서없이 글을 올립니다.

주식에 주자도 모르면서 남들 하니까 한번 해보자 하고 손을 대었건만 주식 폭락으로 저희는 거리로 나앉을까 걱정이 됩니다.

주위의 돈을 빌려서까지 투자했지만 이익을 보기는 마다하고 빚더미에 앉을 형편입니다.

저희 주식 모두 뽑았으니 참고하시고 좋은 말씀 기다립니다.

박사님의 건강을 빌면서.

안녕히 계십시오.

2000년 10월.

어느 가정주부 드림.

<>보유종목:D중공업,G증권,H건설,H엠닷컴,H전자,K은행,T전자,Y반도체...

<답장>

사모님 보십시오.

답장이 늦어 죄송합니다.

펜을 잡았다가 던지고 다시 일어서길 여러번 한 탓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선 과연 "좋은 조언"이란 게 어떤 것일까.

오랜 고심끝에 이 글을 드리오니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고 위안을 받으셨으면 합니다.

두세달 전,대부분 계좌가 그나마 절반이라도 남았을 때만해도 괜찮았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다,지금이라도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

내릴 때마다 팔아야 한다,작은 실패는 큰 성공의 일부다,돈을 들고 살아 남아야 한다,그리고 비쌀 때 사야지하고 기다리다 보면 안 사고 안 잃어서 번다.

하지만 이젠 그런 말도 다 공허해졌습니다.

급기야 80%를 잃고 존폐의 위기에 처한 이 지경에 위험관리는 사치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장이 언제 회복될 것인가,연말엔 좀 뜰까 하는 생각들뿐인 것입니다.

다급한 심정으로 달려오시는 투자자들.

그 사연들은 한결같이 참담합니다.

작년에 좀 벌었다고 올초에 전재산을 넣었다가 요즘은 밥 한 그릇 사 먹기도 주저되신다는 분,노후 자금을 다 까먹고 빚까지 져서 밤잠을 못 이루시는 노부부,많던 재산이 30%도 채 안 남아서 병이 나신 분,본전 만회의 일념으로 손자에게 컴퓨터를 배워 데이 트레이딩을 하시는 노인.

볼수록 딱하기만 한 이런 분들을 위해 제가 하는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공허하고 사치스러워 보일지어정 그래도 여전히 소중한 것,바로 위험관리의 대원칙을 깨쳐 드리는 일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남은 재산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끊임없이 혹독한 정신적 고통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모님,두세 달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늦지 않았나 느낄 그 때가 가장 빠른 것입니다.

사모님께 필요한 건 어떤 주식을 팔고 어떤 걸 보유할 것인가의 결정이 아닙니다.

올바른 투자철학,그리고 이에 근거한 올바른 원칙수립과 습관형성입니다.

철학이 올바로 서면 주식을 대하는 자세가 변화합니다.

원칙이 바로 서면 그 때는 현상황을 타개할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리고 올바로 형성된 습관은 언젠가 오게 될 상승장에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사모님은 지금 적군이 몰려우는데 총알이 몇 발밖에 남지않은 병사의 입장입니다.

급한 김에 아무렇게나 방아쇠를 당기면 결말은 뻔합니다.

절대절명의 이 순간에도 침착하게 한 발 한 발 정조준해서 원칙대로 쏴야 합니다.

조만간 꼭 한 번 뵙고 더 자세한 말씀 나눌 수 있길 바라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2000년 10월 30일.

김지민원장 드림

< 한경머니자문위원 김지민 현대증권투자클리닉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