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KDL) 사장이 일으킨 6백80억원 대의 금융사고는 가뜩이나 취약한 벤처업계와 코스닥시장에 일파만파를 몰고올 전망이다.

지난 1998년 2천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해 불과 2년여만에 20여개 기업을 거느리며 벤처발 문어발확장을 시도한 "정현준 신화"는 주가폭락의 덫에 걸려 좌초하게 됐다.

검찰이 정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고 금융감독원도 정씨가 최대주주인 서울 동방,인천 대신상호신용금고에 대한 특검을 진행중이어서 조만간 사건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모럴 해저드의 극치=동방·대신금고의 불법대출 과정은 대주주 경영진및 직원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낸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결정판이라고 금감원은 보고 있다.

최대주주인 정씨는 금고의 고객돈 6백80억원을 ''쌈짓돈''처럼 사업 확장에 끌어댄 것으로 드러났다.

금고법상 출자자에 대한 여신을 할수 없게 돼있어 정 씨는 제3자 이름을 활용했다.

경영진은 이를 공모하거나 방조했다.

동방금고의 직원 40명이 이를 눈치채자 무마조로 1인당 거의 1억원에 달하는 37억원(1천5백만∼1억8천만원)의 명예퇴직금을 집어줬다.

또 이들을 다시 계약직으로 고용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직원들이 금감원에 제보하겠다고 협박하자 이를 감추기 위해 저지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정씨와 일부 직원,고객들은 사설펀드를 만들어 평창정보통신 주식 20여만주를 주당 1만1천원에 매입한 뒤 주가가 3천7백원으로 급락하자 동방금고 돈 15억원으로 손실을 메웠다.

대신금고도 금고법상 취득이 금지된 장외종목인 평창정보통신 주식 33만주를 고객돈으로 샀다.

그나마 주식은 정씨가 부당하게 빼갔다.

주식대금 36억원 가량을 도둑맞은 셈이다.

정씨의 불법행위는 4백여명의 소액주주들에게서 끌어모은 평창정보통신 50만주의 대금을 제대로 결제하지 못하면서 종말을 맞게 됐다.

1만1천원하던 주가는 현재 2천원대로 추락했다.

◆벤처및 금고업계 충격=''정현준 쇼크''가 20여개 관계사와 벤처업계 전반에 미칠 파장을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벤처업계에선 신기술 개발보다는 ''주식담보로 대출받아 또다시 주식을 사는 주테크''로 돈방석에 앉았던 졸부들이 주가폭락으로 된서리를 맞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금고업계도 내년 예금부분보장제를 앞두고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30개 안팎의 부실금고가 퇴출될 예정이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고객들은 겉으론 멀쩡해 보이는 금고들도 다시 들여다봐야 할 판이다.

동방금고는 작년 10월 태평양그룹이 정씨에게 넘겼고 BIS비율이 18.65%에 달하는 우량금고였다.

동방금고가 외견상 문제 없어 특검 우선순위에서 빠졌고 대신금고(BIS 1.58%)는 불법대출액이 적어 조기에 적발하지 못했다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업계는 동방과 대신금고의 경우 23일 문을 열자마자 고객들의 예금인출요구가 몰리는 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오형규 기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