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정상은 지난 14일 밤 5개항에 걸친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문에 합의하고 서명했다.

반세기 이상의 한반도 분단역사에 대전환점이 될 만한 사건이었다.

특히 두 정상이 자주적인 통일원칙을 천명하고 양측의 통일방안에 대한 공통성을 인정한 부분은 민족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또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을 위한 경제협력에 합의함으로써 남북경협이 크게 확대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러나 남북정상의 공동선언문 합의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이들 합의사항을 구체화하고 실천하는 문제가 과제로 남아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결산하며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좌담회를 열었다.

최경환 본사 전문위원의 사회로 열린 좌담회엔 안병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박영규 통일연구원 부원장,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안두순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참tjr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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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경환 위원(사회) =남북한 정상은 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자주적 통일 등 5개항에 걸친 공동선언문에 합의했다.

앞으로 이들 합의사항에 대한 후속 조치들이 뒤를 이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이번 공동선언의 의미에 대해 평가해 달라.

<> 안병준 교수 =남북정상의 공동선언은 두가지 큰 의미가 있다.

우선 대결과 반목의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된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또 화해와 협력 관계를 도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남북한 정상이 또 만나기로 함으로써 정상회담의 정례화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동선언은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북한이 이같은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한 것은 이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현실인식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특히 급속히 글로벌화되고 있는 세계경제에 적응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지난 90년 남북기본합의서 합의가 공산권의 붕괴이후 생존을 위한 노력이었다면 이번 공동선언은 세계경제 변화에 대응하려는 몸부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 박영규 부원장 =이번 공동선언은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했다는데 의미가 크다.

서로 부담스러운 문제는 가급적 피하고 합의가 가능한 문제에 대해서만 공동선언문으로 채택한 점이 그렇다.

또 당국자간 대화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 후속 조치를 명시한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어쨌든 북한도 이제 변화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 안두순 교수 =남북공동선언의 핵심은 양측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했다는 점이다.

각각의 체제를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는 남북한이 협상 파트너를 넘어 공존공영을 위한 동반자적 지위로 격상됐다는 의미를 갖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이 남북공동선언에 합의한 배경은 두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남한을 배제하거나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다는 현식인식이 첫번째다.

다음은 김 국방위원장이 북한 체제를 어느정도 장악해 자신감을 얻었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지속적인 햇볕정책의 결과라는 점도 무시할 순 없다.

<> 좌승희 원장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의미가 크다.

남북한 관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동안의 적대관계에서 공생과 상생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남북경협에 밝은 전망을 보여줬다.

<> 최 위원 =특히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 국방위원장의 태도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 안병준 교수 =한마디로 평가하긴 힘들다.

하지만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는걸 대외적으로 보여 주려 했던건 분명한 것 같다.

남한엔 대남정책이 바뀐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세계를 향해선 국제체제에 동참할 수 있는 국가라는 점을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게도 앞으로의 변화에 대비하라는 암시를 주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 박 부원장 =김 국방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자신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상당히 불식시킨게 사실이다.

그것이 의도된 연출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판단하기 힘들다.

그러나 북한이 전향적으로 자세를 바꿔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가능성은 충분히 보여줬다고 본다.

<> 최 위원 =이번에 공동 선언된 5개항은 총론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앞으로 상당한 파급효과도 예상된다.

분야별로 파급 영향을 진단한다면.

<> 안병준 교수 =첫째항인 자주통일 문제는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라고 볼 수 있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 당사자가 풀어간다는 원칙이다.

따라서 당국간 대화가 계속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둘째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도 향후 귀추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남한의 연합안과 북한의 연방안을 어떻게 절충해 나가느냐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

셋째 합의한 이산가족과 미전향 장기수 해결 문제는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다.

일자까지 8월15일 전후로 못박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다.

넷째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을 위한 경제협력도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당국자간 대화 합의는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이상의 네가지 합의내용이 얼마나 구체화되고 실천될 수 있느냐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한다면 양측간 정치적 신뢰를 구축하는 전기가 될게 분명하다.

<> 안두순 교수 =이번 공동선언으로 판문점의 연락사무소 정도는 다시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로간 상주대표부를 설치해 운영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과 진통이 있을 것이다.

상주대표부를 둔다는 것은 정식외교관계의 직전단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락사무소에서 다소 진전된다면 양쪽의 경제권익을 대표한다는 의미의 "권익대표부" 정도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물론 앞으로 더욱 진전되면 상주대표부 설치문제가 분명히 논의될 것이다.

또 경협확대를 위해선 경제공동위원회도 가동될 예상이다.

당장 북한 투자를 위해선 투자보장협정이나 이중과세방지협정, 결제방식 등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좌 원장 =공동선언문에 "민족경제의 균형발전"이란 표현이 들어간건 주목된다.

이는 상당히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북한으로선 피폐한 경제를 되살리고, 남한 입장에선 장기적으로 통일비용을 낮추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경협도 전통 산업의 임가공 방식에서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북한에 제조업체가 투자하려면 물류비용이 많이 드는 등 애로가 많다.

그 대안으로 IT(정보기술)부문에 대한 투자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

IT산업은 물리적 인프라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

특히 북한은 소프트웨어 분야 등에서 우수한 기술과 인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기업이 바로 그같은 분야에 투자진출한다면 남북간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최 위원 =남북공동선언문은 출발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많다.

후속조치 등 앞으로 남북한 당국간에 풀어나가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지 않은가.

<> 안병준 교수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과제는 크게 두가지라고 본다.

하나는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 비용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합의를 어떻게 끌어내느냐가 중요하다.

둘째 자주통일 문제와 관련해 주변 강대국과의 이해를 어떻게 조정해 나가느냐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간 세력다툼에서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풀어나갈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때문에 앞으론 강대국 외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 박 부원장 =한국은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번 공동선언내용은 한.미간 갈등을 불러 일으킬 소지도 없지 않다.

자주적 통일 등의 문제가 그렇다.

이를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

또 미국과 북한간의 관계에서도 한국이 중간조정 역할을 잘 해 나가야 한다.

<> 안두순 교수 =남북경협의 경우도 해결할 문제가 적지 않다.

지난 3월말 현재 대북투자사업자 승인을 받은 회사는 39개사에 불과하다.

그동안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상당히 제한적이었다는 얘기다.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SOC나 에너지, 농업개발 등에 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물론 여기엔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앞으로 5년간 매년 20억달러 이상씩이 들어가야 한다는 추정도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문제다.

<> 좌 원장 =대북 경협을 위한 재원조달 문제는 사실 간단한게 아니다.

한국이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결국은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의 지원을 유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북한이 국제금융기구 등에 가입할 수 있도록 돕는게 시급하다.

또 북한에 투자하는 기업 등에 대한 한국 정부가 일정 수준 지급보증을 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정리=차병석/김동욱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