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23일 정부가 출자한 은행 지분을 조속히 팔아 민영화할 것을 지시했으나 현재로선 사실상 속수무책이란 지적이 금융계와 정부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김 대통령은 정부가 은행지분을 오래 보유할 경우 관치금융 오해를 살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같이 지시했다고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이 전했다.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서라도 은행들의 경영이 정상화되는 대로 정부보유 지분을 빨리 팔아 민영화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계에선 은행 주가가 액면가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지금 정부지분을 판다는 얘기는 전혀 무의미하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야당의 "신관치" 비난만을 의식해 현실적으로 방법도 따져보지 않고 매각문제부터 꺼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계 관계자는 "주당 5천원씩 공적자금이 들어갔는데 은행주가는 2천원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라며 공연히 은행주가에 찬물만 끼얹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한빛 조흥 외환은행 등에 넣은 정부출자금은 이미 4조~5조원대의 평가손실이 난 상태다.

정부가 은행에 넣은 공적자금을 제대로 회수하려면 주가가 5천원만 돼선 안된다.

연 10% 안팎인 이자비용과 예금대지급으로 못 건진 돈까지 감안하면 주당 1만원은 돼야 한다.

그래야 국민세금을 축내지 않는다.

현재 은행들의 안팎 여건에 비춰 당장 주가가 오를 가능성은 희박하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은행주가 실적호전 기대에 비해 저평가된 것은 틀림없지만 2차구조조정에다 정부지분이 짓누르는 한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정경제부와 예금보험공사는 최근 증권사의 금융업종 애널리스트들과 접촉해 은행주가를 띄우기 위한 방안을 강구했지만 지금으로선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다.

이와함께 정부가 은행 소유지배구조에 대해 방침을 확정짓지 않은 상태여서 은행지분 조기매각은 혼선을 불러올 소지도 있다.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은 금융지주회사를 통해 정부지분을 처분하는 방법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금융지주회사법이 올 연말께나 시행될 전망이어서 정부지분 처분논의는 내년이후의 문제가 된다.

그것도 은행주가가 최소한 액면가 이상으로 회복된다는 전제에서다.

정부 관계자는 "은행지분 처분을 공적자금 회수측면에서만 본다면 시급한 문제지만 이는 은행의 소유구조, 금융지주회사 등 현안과도 얽혀 있어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금감위원장은 이같은 점을 의식해 "대통령의 지시는 은행의 경영정상화나 증시상황을 감안해 가급적 조기매각 방안을 강구하라는 원론적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이 위원장은 공적자금 추가조성 필요성에 대해 현재로선 추가 조성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공적자금을 넣을 곳은 많은데 쓸 돈은 없고 회수방법도 요원한 상황이다.

공적자금은 빨리 회수해야겠지만 효율적으로 제대로 회수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오형규 기자 ohk@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