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의적 연구의 산실 - CSEM/IBM ]

누샤텔(Neuchatel).

스위스 중심부에 자리잡은 인구 3만5천명의 아담한 도시다.

시계의 고장으로 유명한 이곳은 일찍부터 정밀가공이 발달했다.

여전히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요즘 이곳 사람들이 최대 자랑거리로 삼는 것은 더이상 과거의 ''시계''가 아니다.

이들의 긍지로 새로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은 미래의 ''마이크로 테크놀로지(초미세 가공기술)''다.

누샤텔 기차역에 내려 도보로 10분 거리.

한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있다.

견고한 느낌의 금속 소재로 지어진 건물 앞에는 "CSEM(Centre de la Suisse Microelectro System)"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바로 이 이름이 스위스의 핵심기술 마이크로 테크놀로지의 인프라를 짊어지고 있다.

CSEM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조직을 갖고 있다.

절반은 정부출연연구소, 나머지는 일반기업의 성격을 갖고 있다.

규모도 작다.

전체 직원이 3백50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다른 기업과 마찬가지로 연구부터 개발, 제조까지 다한다.

그러나 연구.개발(R&D)이 전체활동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점이 독특하다.

그만큼(R&D)에 무게를 둔다.

이러한 구조는 전적으로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케 하기 위한 것이다.

"CSEM은 연간 15개 내지 20개의 특허를 냅니다. 이는 한 기술을 여러 국가에 출원한 것을 계산한 수치가 아닙니다. 순수하게 창의적인 아이디어 수를 의미하는 거죠. 세계 어디에도 없는 그런 아이디어 말입니다"

자비에 아르귀트 부사장은 CSEM이 "창의력을 먹고 자라는 곳"이라고 표현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CSEM은 이러한 창의성을 바탕으로 해 21세기 첨단기술인 마이크로테크놀로지를 리드하고 있다.

세계 최대 보청기회사인 포낙(Phonak)의 제품에 바로 CSEM에서 개발한 마이크로센서 기술이 이용된다.

롤렉스 술서 스와치 모토로라 휴렛팩커드 ABB 등 유수한 기업들이 CSEM의 기술을 쓴다.

프랑스 닙슨(Nipson)의 초고속 컬러프린터에도 CSEM에서 연구.개발한 마이크로 마그네틱프린터헤드가 들어 있다.

이 헤드를 이용한 프린터는 초당 1천페이지의 고감도 컬러 프린팅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최첨단 기술을 갖고 있는데도 CSEM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것은 CSEM이 산업계에서 차지하는 전략적인 위치 때문이다.

산업계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보통 연구.개발.제조 부문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진다.

이때 학교는 보통 연구에서 초기개발까지 담당한다.

산업체는 응용연구, 제조, 판매 등을 맡는다.

여기서 CSEM의 독특한 포지션은 응용연구에서 초기 제조모델까지다.

다듬어지지 않은 개념을 잘 추스려 매력 있는 제품으로 변신시키는 것이다.

스위스 산.학.연 조직들과 그 매개체인 CSEM은 거미줄처럼 정교한 망으로 엮어져 있다.

이들 사이에서 CSEM은 끊임없이 새로운 발상을 해야만 한다.

바로 이 점 때문에 CSEM에서는 연구 환경을 중요시한다.

창의적인 분위기를 조성키 위해 CSEM은 연구 부문을 개발및 생산 라인과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연구에 투입되는 3분의 1 인력은 생각과 시간에 구속되지 않아도 된다.

출퇴근이 자유롭고 신선한 시도를 했으면 실패해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

"창의력은 어느 한 분야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여러 학문의 인터페이스와 문화의 교류에서 나옵다고 봅니다"

이곳의 최고기술책임자(CTO) 펠릭스 루돌프 박사는 다양성의 공유를 상당히 강조한다.

CSEM이 주력하고 있는 마이크로시스템은 다른 학문들간의 상호 복합 작용에서 탄생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CSEM은 애써 국제적인 환경을 만들기까지 했다.

스위스 정부는 한 기업이 채용할 수 있는 외국인 비중을 20~25%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CSEM은 주정부의 특혜를 받아 이에 대한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 전체 인력의 40%가 30개국에서 온 외국인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스위스는 작고 누샤텔은 더욱 더 작다. CSEM도 결코 큰 조직은
아니다. 하지만 창의성과 개방성에 있어서는 누구 못지 않다"고.

뉴샤텔(스위스) 고성연 기자 amazingk@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