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수 <코미트M&A 대표>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시인 한용운은 그렇게 통곡하였다.

해방후 한강의 기적이라 자부하던 한국경제가 IMF통치아래로 들면서 우리
모두는 허탈하고 착잡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다.

특히 지난 수십년간 기업인수에 대한 견고한 자물쇠였던 "총발행주식수의
10%를 초과하는 상장법인 주식취득 제한"이 완화된지 8개월만에 외국인에게
종목당 50%까지의 시장이 전격 개방되면서 기업인수합병(M&A)부문에 있어
우리 "님"들에 대한 외국인의 무차별적 유린이 예상되고 있다.

이에따른 방어전략 수립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우리 기업의 이질적
문화가 무형의 방어장벽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질적 기업문화로 인해 M&A가 실패로 끝난 사례로는 휴스턴정유회사
(Houston Oil and Minerals)에 대한 테네코(Tenneco)사의 경우를 들 수 있다.

미국 코네티컷주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적 거대기업인 테네코사가
휴스턴사를 인수하면서 피인수 회사를 별도법인으로 존속시켜 기존의
영업방식을 유지할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기업문화의 극심한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휴스턴사 내부 조직은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는 진취적이며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젖어있던
휴스턴사 근로자들에게 거대기업의 엄격한 명령계통에 따른 관료주의를
수용한다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었다.

휴스턴 종업원들은 폭증하는 서류작업에 짜증을 냈으며 실적위주의 경영에
따른 인간성 상실에 절망하였고 지나치게 신중한 의사결정 방식에
격분하였다.

이러한 문화충격으로 인해 근로자 이직이 속출, 경영진의 34%, 참모진의
25%, 생산직 근로자의 19%가 회사를 떠났다.

테네코사는 휴스턴 근로자들의 이직을 극구 만류하였으나 역부족이었으며
결국 별도법인으로 유지시켜 존속시키겠다는 약속은 공수표로 끝나고 말았다.

이 사례에서 보듯 인수자는 단순히 인수합병 이전과 같은 형태, 같은
작업방식을 보장함으로써 피 인수기업 종업원들의 반발을 무마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상이한 기업문화는 모기업에 대한 적대감으로 발전하여 결국 실패한
M&A로까지 치닫게 된 것이다.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는데 36년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것도
외세의 부산물이었다.

이제 우리 시장과 기업에 대한 외국의 농락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IMF의 경제지배를 과연 어느 시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아무도 속단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은 우리의 역량과 실천의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한국적 기업문화를 지키는 것이 역설적으로 세계속의 우리 "님"들을
지키는 무형의 방어벽이 되는 것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