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이상 계속된 증시침체와 공황상태로 치닫는 금융시장지진이 끝내
업계 4위인 동서증권을 파국으로 내몰았다.

동서증권은 9월말 현재 자산총계가 2조7백31억원으로 부채총계
1조4천2백79억원보다 7천억원정도 더 많은 업계 4위(약정기준)의
대형증권사.

그런 회사가 일시에 무너지리라곤 회사내부 사람들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금융시스템이 붕괴되고 고려증권부도와 함께 동서증권 거래고객이
예탁금을 인출한 것이 거대기업을 쓰러뜨린 결정타가 됐다.

일종의 신용공황이다.

동서증권이 일단 자금난에 봉착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지난 11일에는
2백50억원의 고객예탁금이 빠져나가는등 최근 3~4일동안 2천억여원의
예탁금중 절반에 육박하는 금액이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1일 돌아온 8백억원의 단기상환요구자금중 예탁금인출분인 2백50억원을
저녁 11시이후 가까스로 결제했지만 결국 파국을 맞고 말았다.

자금난에 몰린 동서가 마지막으로 매달린 곳은 종금사의 하루짜리
콜자금.

9월말 현재 5천6백97억원의 차입금중 하루짜리 콜자금이 2천3백12억원에
달했으며 최근에는 이 규모가 훨씬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

끝없는 증시추락으로 95년 4백89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낸데 이어
지난해에도 3백75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도 업계 4위 증권사의 체력을
소진시킨 요인.

올 반기결산에서도 4백37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95년 3월 9천8백50억원이던
부채규모가 지난 9월에는 1조4천27억원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여기에다 건설경기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극동건설(모기업)이
계열금융사인 동서증권을 통해 대거 자금을 조달한 것도 동서증권의 부실을
심화시켰다.

자구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95년 3월 4천2백억원이던 상품주식을 지난 9월 2천4백억원으로 줄이고
최근 증권업계 사상최대인 3백명의 인원을 명예퇴직시키는등 감량경영에
나섰지만 신용공황의 대지진을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4월부터 9월까지 반기주식평가손이 9백48억원으로 국내 증권사중
가장컸다.

그러나 동서증권의 속사정이 증권업계 모두가 겪고 있는 고통이고 보면
나머지 증권사의 연쇄도산을 예상하기가 어렵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금융공황이 진정되기 전에는 어느 증권사도 생존을 장담할수 없는
살얼음판을 걷고있는 것이다.

"부채비율 1천2백%인 증권사와 부채가 자산의 2배가 넘는 증권사도
멀쩡한데 왜 동서가 쓰러져야 하는지"(동서증권관계자)에 대한 답을
정부가 내놔야 할 차례다.

한편 동서증권은 제3자 인수를 통해 영업정상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극동건설은 주택은행 국민은행 씨티은행 JP모건 모건스탠리 등과
인수의사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서증권은 자산이 부채보다 많아 인수메리트는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금융기관의 특성상 예탁금이 빠져나갈 경우 고객을 다시 끌어들여야
하는 부담이 인수협상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백광엽 / 김남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