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의 마인드를 평가해 주십시오"

지난 9월말 홍콩의 모투자회사 대회의실.

엥도수에즈 WI카증권 서울지점의 K이사는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고 이마에
맺힌 땀을 연신 닦아냈다.

그가 준비해 간 국내 기업관련 정보나 설명에 외국인들이 큰 관심이
없는듯 했다.

수익성이나 성장성을 완벽하게 수치화해 발표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밖의
질문만 쏟아져 나왔다.

경영자의 과거 경영행태 등을 주섬주섬 꿰면서 급한 불만 꺼야 했다.

외국인들의 주식투자 판단기준이 다양화되고 엄격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최근 국내 기업들이 부도로 잇따라 쓰러지자 주당순이익(EPS)보다 현금흐름
(Cash Flow)과 경영자의 마인드가 외국인들의 새로운 투자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경험은 비단 그만이 겪은게 아니다.

"A그룹이 해외에 얼마를 투자했는데 해외차입 규모가 얼마냐"거나 "B기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는데 성공할수 있느냐"는 질문은 전에 없이 잦아지고
있다.

국내 증권사 해외세일즈 담당자들도 최근 들어 전화를 통해서나 해외투자
설명회시 이런 질문을 전에 없이 자주 듣는다고 한다.

한 해외세일즈 담당자는 이렇게 풀어놓는다.

"우리 경제가 잘 나갔던 때만 해도 외국인들은 블루칩에 꿈벅 죽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몇년간 엄청난 순익을 냈다가 지난해 반도체가격
하락으로 낭패를 보았잖아요.

경기싸이클에 따라 실적이 큰 굴곡을 보이니 자기자본이익률(ROE)이나
경제적부가가치(EVA)란 기준을 들이댑니다"

"국가신뢰도인 컨트리리스크도 중요한 투자기준으로 삼습니다.

요즈음처럼 환율도 컨트리리스크의 한 요소죠.

무역구조나 금융시스템 등 경제가 잘 굴러가는지가 환율로 그대로
드러나니까요.

한전이 주매도대상이 됐던 것도 환율 때문이었어요.

개별 종목의 내재가치을 보고 사고 팔기도 하지만 거시적인 기준을 먼저
고려한후 판단하고 매매합니다.

아시아금융시장이 불안하자 한국의 투자비중을 대폭 줄이고 있도 컨트리
리스크를 감안했기 때문입니다"

국내외 경제환경이 변하는 만큼 외국인들의 투자기준인 "푸른 눈"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얘기다.

그동안 "푸른 눈"은 국내 시장주도주의 방향계 역할을 해 왔고 "외제주가"란
말을 낳았을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지난 92년 국내증시가 개방됐을때 "푸른 눈"의 초점이 저PER주에 모아지면서
"저PER주 혁명"을 일으켰다.

기업의 내재가치에 비해 주가가 낮다는 투자기준이었다.

자산가치가 높은 주식에도 눈길을 주었다.

저PER주이면서 자산주인 태광산업이 대표적인 예다.

91년말 5~6만원대였던 주가가 당시 20여만원대로 치솟았고 지금까지
30~40여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유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저PER주와 자산주는
외국인들의 시야에서 멀어졌고 이들 종목의 인기도 덩달아 퇴색됐다.

이후 94년부터 국내 경기가 활황조짐세를 보이면서 성장성이 뛰어나고
싯가총액도 큰 한전 삼성전자 SK텔레콤 포철 등 블루칩이 외국인들의 주관심
대상이 됐다.

그러나 최근 금융불안이 심해지자 블루칩 매도마저 서슴지 않았다.

자본시장으로의 외국인 유치는 갈수록 힘든 일이 되고 있다.

<김홍열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