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외환공황이 현실화되는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사상최고치 경신행진에 만족하지 못한탓인지 하루중 상승 가능한 최대폭까지
환율이 치솟아 거래자체가 끊기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환율예측이 두렵다는 얘기가 외환딜러들 사이에 공공연히 나도는 상황이다.

피부로 느끼는 감각대로라면 작금의 외환시장은 말그대로 패닉이다.

외환시장 관계자들은 원.달러 환율이 28일 9백50원대를 넘어 일중 변동폭
(당일 매매기준율의 (-2.25%)~(+2.25%))인 9백57원60전까지 치솟자 "올 것이
왔다"는 표정들이었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하루에 21원씩이나 오르는 상황에서 "무조건 매수"
외에 다른 어떤 대응방안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사상최고치 경신행진속에서 다져진 내성으로도 감내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때문에 심리적 불안감이 워낙 강하게 확산돼 당분간 안정세를 기대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 상황이 돼 버렸다.

환율이 사상최대로 올랐다는 사실외에도 외환공항을 시사하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외환당국이 환율 방어능력을 상실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9백50원선을 훨씬 넘어서자 한국은행은 시장에 내놓았던 매도개입물량을
슬그머니 회수했다.

개입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선 적당한 타이밍을 고려해야 한다는게 표면적인
이유.

하지만 환율 상승압력을 잠재울 유일한 대안으로 꼽혔던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도 기대하기 어려워 졌다는 점에서 딜러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외환당국조차 공급했던 달러화를 되걷어가는 상황에서 공급물량이 나올리
만무하다.

개입물량을 제외할 경우 이날 시장에 공급된 달러화는 거의 없었다고
딜러들은 전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기업체들의 결제용수요를 위해 실수요증빙을 받고 달러화를
공급하는 편법 수단을 동원하기로 했다.

여기에 S&P(스탠다드 앤드 푸어스)에 이어 무디스까지 한국의 신용등급을
한단계 낮춰버리는 악재가 이날 외환시장에 또 불거졌다.

이에 따라 그동안 국내금융기관들에게 외화자금을 지원했던 국책은행들의
신용도도 동반하락, 달러화를 공급할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외환딜러들은 금융시장의 동조화현상도 외환위기를 장기화할수 있는 요인
으로 지적한다.

동남아 화폐위기뿐 아니라 뉴욕 도쿄증시에도 동조화되고 있어 국내 대책
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전망에서이다.

실제 이날도 재경원 등 외환당국은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에 빌려준 외화
수탁금을 활용해서라도 환율안정세를 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뉴욕 동경증시의 폭락세로 한국증시도 종합주가지수 5백선이 붕괴
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환율도 급등했다.

환율안정책이 구두선이었음을 입증하는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환율 상승세가 워낙 강해 다른 대책이 없다"면서
"격랑에 휘말려 그저 물길닿는 대로 움직일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된 심정"
이라고 심정을 밝혔다.

< 박기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0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