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의 일년은 "시즌"과 "비시즌"으로 뚜렷이 구분된다.

기업결산업무가 몰려있는 1월말부터 3월까지가 회계사의 주가가 천정으로
치솟는 시즌이다.

새벽 2, 3시까지 매일 일해야 하고 일요일에도 쉴 수가 없다.

"설날연휴를 즐기고 스키를 탈줄 아는 사람은 회계사가 아니다"
(삼일회계법인 구성회 회계사)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반대로 비시즌에는 할 일이 거의 없다.

"겨울 한철동안 일하고 일년내내 편하게 지내기 위해 회계사가 됐다는
사람도 있다"(삼정회계법인 조민식 회계사).

추석연휴가 당연히 길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추석은 있지만 설날은 없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회계사 업무가 이처럼 "한철장사"인 것은 결산일이 12월에 집중돼있는
탓이다.

상장회사의 경우 7백74개사중 6백8개사(78%)가 12월에 결산한다.

회계사는 12월결산법인에 대해 법인세납부기한인 3월말까지 감사를 끝내야
한다.

자료가 나오는 1월말부터 감사를 시작하기 때문에 2개월동안 해치워야 한다.

무리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세동회계법인 이장식 이사는 "회계감사업무에 메달려 며칠동안 잠도 못자고
일하다가 쓰러져 일주일동안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겨울동안 회계사는 건강마저 위협받는다.

반대로 비수기에는 할일없이 지내는 사람이 많아진다.

더욱 큰 문제는 부실감사의 가능성이다.

삼정회계법인 김익수 회계사는 "12월결산법인에 대해서는 한 회사당 3일정도
시간을 내는게 고작이다.

제출자료의 수치를 합산하고 검토하는 것조차 힘들어 수박 겉핥기식으로
감사가 끝날 우려가 크다"고 토로한다.

이같은 상황인데도 12월 결산법인은 자꾸 늘어난다.

지난 95년 상장회사인 한국안전유리(3월결산)와 한국코트렐(9월결산)이
결산일을 12월로 바꿨다.

지난해에는 삼영무역(9월결산)이, 올해는 세림제지(6월결산)가 12월로
변경했다.

"사업계획 수립이 쉽고 경쟁업와 경영실적을 직접 비교평가할수 있는데다
세무업무를 처리하는 것도 간편하다"(세림제지 김웅기 회계팀장)는
이유에서다.

회계감사는 "귀찮은 일"이고 한꺼번에 주총을 여는 것이 "여러가지로
편리하다"는 생각도 12월결산을 선호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외국계회사의 경우 나이키코리아(5월) 암웨이코리아(8월) 등 대부분이
다양한 결산기를 택하고 있다.

"회계사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회계내역을 검토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점들을 지적해주고 세무측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나이키코리아 정윤민 부장)고 한다.

경영실적을 객관적으로 평가받는 투명경영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라도 "12월
무더기 결산"의 문제점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
이다.

< 현승윤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