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금융시장의 중심지 뉴욕 월 스트리트.

제조업에선 날고 뛴다는 일본이 금융을 한수 배우러 오는 곳도 이곳이고
인도의 숱한 수학천재들이 모여드는 곳도 여기다.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든 밥벌이든 목표야 갖가지이지만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제 둥지를 튼 채 살아가고 있다.

물론 한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의 고등학교시절 쌓은 남다른 수학실력으로 "하이테크"금융상품의
창조에 골몰하는 사람도 있고 이민생활 20년동안 한국땅을 한번도
못밟았지만 한국의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채권세일즈를 하는 사람도
있다.

제3의 코메리칸들이라고나 할까.

제임스 림(23세).81년 미국에 건너가 와튼 스쿨에서 재정학및 심리학을
전공했다.

현재 근무하는 곳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뉴욕). 경력 2년반. 그의 업무는
디리버티브 엔지니어링. 이를테면 파생금융상품을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다.

굵직한 금융사고가 날때면 으레 신문지상에 등장하곤 하는 캡션이니
플로어니 하는 복잡한 장외거래(OTC) 파생금융상품들이 모두 그와
같은 사람의 손을 통해 만들어진다.

말하자면 선물의 연금술사가 그다.

뿐만 아니라 만든 상품을 직접 팔러다니기도 한다.

"지난해 1명의 마켓팅 요원을 뽑는데 60여명이 지원을 했을 정도로
이 직업에 대한 선호도는 높습니다. 근무시간이 길지 않은데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업무가 매력이지요"

미동부해안에 있는 2백여개 기업들이 그의 고객이다.

많게는 50억달러,적어도 1천만달러를 투자하는 사람들이다.

평소에도 금융시장 움직임에 예민한 고객들이지만 요즘들어 부쩍
질문을 많이 한다.

상품이 갖고있는 리스크 정도가 주관심사다.

복잡한 산식이 동원되면 될수록 파생금융상품이 인기를 끌었고 또 지금도
그런 경향에는 변함이 없으나 식품회사인 P&G(미국식품회사)등에서 잇따라
발생한 금융사고가 고객들의 몸을 사리게 한다.

이때문에 "장사"가 예전같지 않다.

최근 뱅크 오브 아메리카도 마켓팅 세일즈부분에서 인원을 10%감축했다.

장따라 부침이 이뤄지기는 한국과 다를 바 없지만 어느날 갑자기
옆동료의 책상이 허전할 때는 정말 치열한 경쟁을 실감한다.

월가생활 3년째인 척 명(28). 그가 1년6개월전 리먼브러더스증권에서
현직장인 베어스턴즈증권으로 옮길 때 주위동료들이 극구 말린 이유중
하나는 "베어스턴즈는 잘 자르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살아남기 위한 피말리는 경쟁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생각보다 월급은
많지 않아도 능력있는 사람을 감원하지는 않더군요"

그는 다른 사람들이 오전7시에서 오후7시까지 근무하는 것과 달리
그가 오전6시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일한다.

콜롬비아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도 법대에 가고싶어 변호사 사무실
에서 근무하기도 한 그였다.

하지만 이젠 마음을 잡았다.

"사장인 앨런 그린버그가 평사원과 다를 바 없이 2층 트레이딩 룸에서
함께 일합니다. 숨쉴틈없이 뛰는 사람들 속에서 혼자 서 있을 수는
없지요"

이제 막 일에 재미를 붙인 증권계 초년병인 셈이다.

"미국채권에 투자하려는 한국기관들을 주로 상대합니다. 가끔가다
미국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려는 한국기업이 있을 때는 신용등급 정보나
연구자료도 제공합니다"

6살때 한국을 떠난뒤 파라구아이를 거쳐 수리남의 첫 한국인 이민자가
되기도 했다.

미국에 자리잡은 오늘날까지 한번도 고국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 채권시장이 개방될 경우 외국계자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걸 보면 그에게도 피는 물보다 진한 듯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