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사장의 스타일은 증권회사들의 창업배경이 다양한 만큼이나
제각각이다.

사채업에서 몸을 일으킨 오너가 창업한 회사의 사장들은 대개 철저한
구두쇠요 치밀한 청지기들이다.

최장수 사장인 한진의 송영균 사장이나 대유증권의 배창모 사장이
이범주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창업자가 월급장이였던 회사들은 회사에 따라 편차가 커 일률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신영증권은 보수적이며 안전운행이 경영의 주특기라고 할 수있지만
대신증권은 무차별적인 공격경영이라는 말외엔 별다른 표현 방법을
찾기 힘든 대조적인 회사다.

대기업 계열사들의 사장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대우증권의 김창희 사장은 엘지증권의 새 사령탑에 오른 진영일
사장과 어떤 성격차를 가질까.

선경증권 박도근 사장과 쌍용증권 명호근 사장의 경영철학은 어떤
차이가 있으며 이것이 회사 경영에는 어떻게 반영되고 있을까.

부지런히 뛰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룹의 후광아래 시쳇말로 놀고먹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현대증권 김동윤 사장이 증권계로 발을 디뎠던 것은 지난 81년이었다.

그룹내에서 현대강관과 울산화학의 사장을 이미 역임한 다음이었다.

김사장이 증권계로 옮아올 당시는 아직 국일증권이라는 옛 상호를
쓰던 시절이고 현대그룹에서 증권사가 차지하는 비중도 극히 적었던
시절.

김사장은 3년동안 증권사 사장일을 마친 다음 엘리베이터,미포조선의
사장을 두루 거쳤다.

90년 증권회사로 되돌아왔고 이번 주총에서 재선임됐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바로 다음해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과 대학원을
마쳤다.

현대그룹과는 건설과 인연을 맺었던 그룹내 건설인맥의 한사람. 이력서
하나만큼은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다.

현대그룹을 잘아는 사람들은 그러나 김사장이 그룹의 핵심적인 인사는
아니라는 평가도 내리고 있다.

이점은 선경의 박사장이나 대우의 김사장등 오너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실세 사장들과 다른점이기도 하다.

80년대말 현대중공업 사태 당시 잠시 울산을 비워놓았던 것이 왕회장에게
지적당했고 이것 때문에 현대미포조선 사장 자리를 내놓고 상당기간
쉬었던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증권으로 옮겨 온 이후에도 별달리 두드러진 활동은 없어 "무난한
관리자"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회사 직원들은 김사장을 평가하고
있다.

현대증권은 김사장의 책임만은 아니겠지만 그룹의 위세에 걸맞지 않게
증권계에서는 2진 그룹으로 분류된다.

김사장은 대우증권의 김창희 사장과는 성격적인 대조를 이룬다고도
평가받고 있다.

성과보다는 실책에 대한 책임추궁이 무거운 것이 현대 김사장의 특징
이라면 대우 김사장은 결정도 자신이 하고 책임도 자신이 지는 보스기질
사장으로 비교된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89년 대형 증권사들이 주간사를 따내기위해 총력전
을 폈던 신한은행 공개 업무.결국 그룹총수들까지 동원된 치열한 경쟁끝에
대우 현대 럭키등이 공동으로 주간사를 맡게됐다.

그러나 공개후부터 주가가 폭락해 주간사 증권사들은 거대한 평가손을
기록하게 됐고 이문제에 대한 사장들의 태도에 큰 차이가 있어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후일담이지만 김동윤 사장이 현대증권으로 옮아온 이후 신한은행
주간사를 따냈던 당시의 현대증권 사람들은 오랫동안 심한 질책을
받아야 했다.

스스로는 순탄한 직장생활을 했지만 부하들에 대해 까탈스럽다는
평가도 그래서 나오고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월급사장들의 힘은 오너에게서 나온다.

"온전한 보스"일수 밖에 없는 대우 김사장과 실세 2인자(부사장)를
두고있는 현대 김사장의 차이가 여기서 오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실세가 파견되어 오도록 만드는 것도 자신의 능력 문제겠지만.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