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아미' 안정선 씨·'방탄 박사' 콜레트 발메인 교수 인터뷰
[BTS 10주년] ④ 농인·외국인 아미가 전하는 내 인생을 바꾼 BTS
방탄소년단이 노래에 담아 보낸 메시지를 거대한 '보랏빛 물결'로 전 세계에 퍼뜨린 주인공은 그 팬덤 '아미'(ARMY)였다.

국적, 인종, 세대를 가리지 않고 모인 이들은 그저 한 가수의 팬덤을 넘어 방탄소년단이 전한 자기 긍정의 가치를 실천에 옮기며 하나의 문화 집단으로 성장했다.

가수에게 받은 영감으로 스스로와 주변의 삶을 더 낫게 만든 두 '아미'를 만나 이들의 삶을 바꾼 방탄소년단과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 들어봤다.

◇ "BTS 콘서트에 수어 통역사 배치…아미 선한 영향력 덕분"
"이 가수는 뭔가 다르다.

"
스스로를 '농아미'(방탄소년단의 농인 팬을 가리키는 애칭)라고 소개한 한국농아동교육연구소의 안정선 대표는 '아미'가 된 결정적 계기로 2019년 방탄소년단 멤버 RM의 청각장애 특수학교 기부 소식을 들었을 때를 꼽았다.

그간 청각장애를 질병으로 보고 고치려는 인공 와우 수술 기관에 유명인이 기부를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집단으로서 '농인'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교육 기관에 기부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앞서 '쩔어', '봄날' 등의 방탄소년단 노래를 눈여겨봤었다는 그는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아미'의 길에 들어섰다.

[BTS 10주년] ④ 농인·외국인 아미가 전하는 내 인생을 바꾼 BTS
이전까지 아이돌에 관심이 없던 안 대표에게 케이팝 산업은 그리 친절한 환경이 아니었다.

그가 처음 간 2018년 방탄소년단 콘서트에서 '농아미'를 위한 수어 통역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농인은 음악이나 무대를 즐길 수 없다는 인식이 한국에 있는 것 같다"며 농인으로서 느끼는 장벽을 털어놨다.

노래 가사와 비트, 춤과 표정으로 음악과 무대를 즐긴다는 안 대표는 "수화 통역만 있다면 농인도 청인과 똑같이 콘서트를 즐길 수 있다"고 했다.

2019년 방탄소년단의 로스앤젤레스 콘서트를 계기로 미국에선 법적으로 공연장에 수어 통역사를 두도록 한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이후 국내 콘서트에도 수어 통역사 배치를 위해 나섰다.

그를 도운 건 농인, 청인을 가리지 않고 한 마음이 된 아미들이었다.

트위터를 통해 '농아미'의 고충을 접한 아미들이 이를 전해 나르기 시작했고, 소속사로부터 콘서트에 수어 통역사를 배치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다른 가수의 팬덤에서도 비슷하게 농인이 수화 통역을 요청한 일이 있었는데, 청인 팬에게 공감을 얻는 게 쉽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그에 비해 방탄소년단 노래의 영향 때문인지 아미에게는 기본적으로 선한 마음이 있어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
[BTS 10주년] ④ 농인·외국인 아미가 전하는 내 인생을 바꾼 BTS
방탄소년단은 아직 농인에게 친절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안 대표가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줬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2017년 한국에 돌아와서 한동안 정말 힘들었어요.

한국이 '후진국'이라고 느껴질 만큼 농인의 접근성이 좋지 않았죠. 그때 방탄소년단을 통해 처음으로 희망을 본 거에요.

"
그렇게 얻은 힘으로 농아동교육연구소를 설립한 안 대표는 농아동 교육을 비롯해 더 나은 농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안 대표는 사회와 철학, 인간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그의 활동에 큰 힘이 된다고 했다.

"농인의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일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해서 앞으로 방탄소년단 20주년, 30주년에도 디너쇼를 열어 같이 보내고 싶습니다.

"

◇ 발메인 킹스턴대 교수 "솔직함이 BTS 전 세계에서 사랑받은 이유"
영국 킹스턴대 콜레트 발메인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는 동아시아 대중문화를 연구해 온 학자다.

케이팝은 그의 전공 분야가 아니었지만, 우연히 본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 무대를 계기로 '토끼굴에 빠지듯' 방탄소년단에게 빠져들었다고 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저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했어요.

마치 어린 시절의 좋았던 모든 기억을 되살려주는 것 같았죠."
그의 관심을 더 끌었던 건 화려한 퍼포먼스보다 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이었다.

반항적인 이미지의 힙합 아이돌로 데뷔했던 방탄소년단은 시간이 지나며 음악에 자기애, 화합, 포용 등의 가치관을 녹여내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하면서 국적, 성별, 인종 등 청자들의 다양성을 고려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발메인 교수는 "이들이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걸 지켜본 기분"이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의 특별한 점은 이들이 애초에 완벽한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이에요.

활동 초기엔 음악에서 전형적인 남성성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부적절한 말을 한 적도 있었죠. 방탄소년단의 훌륭한 점은 이런 자신의 실수나 과거를 있는그대로 인정하고 성장한다는 점이죠."
이러한 방탄소년단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본 발메인 교수는 이들이 감정이나 나약함을 숨기는 것이 '남성적인 미덕'으로 여겨졌던 기존의 통념을 깨고 새로운 남성성의 모델을 보여줬다는 내용의 이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솔직함과 연약해질 수 있는 용기가 방탄소년단이 여러 문화권에서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팬데믹 기간에 멤버 지민은 자신이 느끼는 우울감과 외로움을 숨기지 않고 팬과 공유했죠. 이는 국적이나 문화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의 정서를 대변해줬어요.

"
학자가 아닌 한 개인으로서도 방탄소년단을 존경하고 있다는 그는 방탄소년단의 지난 10년을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방탄소년단의 행보가 "흥미롭고 예측불가능한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멤버들이 일과 개인적 삶의 균형을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기'(Yet to Come·방탄소년단 노래 제목) 때문이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