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세르비아 출신 슬로단 고르보비치 감독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우리가 보지 못했던 사회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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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감독 "사회가 외면한 현실, 영화가 보여줘야"
오는 8일까지 열리는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아버지의 길'을 연출한 세르비아 출신 슬로단 고르보비치 감독을 최근 화상으로 만났다.

고르보비치 감독은 "사회에 외면당한 한 남성이 존엄성을 회복해가는 영화"라며 "이 남자는 사회에 저항하는 상징이 되고 싶어하지 않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그의 작은 몸짓이 거대하고 부패한 시스템에 대한 저항처럼 비춰질 수 있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영화는 세르비아 시골에 사는 일용직 노동자 '니콜라'가 열악한 집안 환경에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식들을 지역 복지센터에 뺏기고, 중앙정부 장관을 만나 자식들을 돌려달라고 하기 위해 300㎞ 떨어진 수도 베오그라드까지 걸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르보비치 감독은 "항상 현실에 맞닿아있으려고 하고,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일상에서 간과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려고 한다"며 "영화에서 최대한 세르비아 사회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경각심을 자극할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빈곤을 겪지만, 일반적인 레이더망에는 보이지 않는다"라며 "이 사람들은 가난을 수치스러워하고, 낙인찍힌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영화에서 이들이 보여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아버지의 길' 감독 "사회가 외면한 현실, 영화가 보여줘야"
실제 영화는 세르비아 국영방송에서 상영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르보비치 감독은 "기대보다 훨씬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사람들이 그동안 투명 인간처럼 보지 못했던 니콜라 같은 사람이 동네에 살고 있는지 찾아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며 "사회복지센터 관계자들은 화가 나서 비판하기도 했지만, 이것은 영화에 나오는 부패 등의 이야기가 실제 현실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의 대부분은 니콜라가 길을 걸어가는 장면으로 채워진다.

닷새간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고 오직 걷기만 한 니콜라는 점점 수척해지고 신체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니콜라를 연기한 고란 보그단 배우는 실제 20㎏을 감량했다고 했다.

고르보비치 감독은 "니콜라는 굉장히 가난해 감정을 표현하는 것조차도 사치라고 생각한다.

빈곤 속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했다"며 "리얼리티를 살리려고 했지만, 빈곤을 바라보는 태도가 자칫 거만해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빈곤에 대해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주의를 많이 기울였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길' 감독 "사회가 외면한 현실, 영화가 보여줘야"
영화는 아이를 볼모로 수당을 챙기는 부패한 관료,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는 보여주기식 정책 등을 넌지시 꼬집지만, 악인을 부각하지는 않는다.

니콜라에게 음식을 건네고, 차를 태워주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후반부, 고향에 돌아온 니콜라는 의자, 식탁, 시계 등 살림살이를 훔쳐 간 마을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도둑질을 한 이 사람들조차도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고르보비치 감독은 "시스템이 악한 것이지, 사람들 개인은 선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니콜라에게 온정을 베푸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니콜라와 닮아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라며 "세간을 훔쳐 간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가난이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니콜라가 물건을 하나하나 찾으러 갈 때 부끄러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인의 힘으로 극복이 불가능한 빈곤 문제의 해결책에 대해서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지원이 아니다"라며 "이들에게는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정상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