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2세 감독의 자전적 영화…"마지막 필사의 노력으로 쓴 '미나리'"

자전적 영화 '미나리'로 골든글로브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은 1978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태어나 아칸소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민 2세다.

칸의 혜성으로 등장한 정이삭, 14년 만에 골든글로브까지
예일대에 진학해 생물학을 공부했던 그는 영화 세계를 접한 이후 의사가 되려던 계획을 접고 유타대 대학원에 진학해 영화를 공부했다.

그가 처음 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건 3만 달러로 혼자서 만든 첫 영화 '문유랑가보'가 2007년 미국영화연구소(AFI) 영화제 대상을 받고, 칸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으면서다.

1990년대 중반 내전을 겪은 아프리카 르완다의 현실을 르완다인의 시각과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는 "놀랍고 완전히 장인적인 데뷔작"(버라이어티)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에 벌어진 학살 이후 후유증을 겪고 있는 두 소년의 이야기는 르완다에서 자원봉사를 해 온 아내와 르완다를 방문한 정 감독이 현지인들을 섭외해 11일 만에 찍은 작품이다.

그는 이후 칸국제영화제의 젊은 감독 지원 프로젝트인 시네파운데이션 아틀리에에 선정돼 두 번째 장편 '럭키 라이프'(2010)를 만들었다.

한국 동화 '선녀와 나무꾼'을 토대로 한 세 번째 영화 '아비가일'(2012)과 르완다 다큐멘터리 '아이 해브 신 마이 라스트 본'(2015)을 제작했다.

칸의 혜성으로 등장한 정이삭, 14년 만에 골든글로브까지
딸을 둔 40대 가장으로서 현실을 위해 영화를 포기할 생각을 하고 딸에게 들려줄 마지막 이야기로 생각한 것이 영화 '미나리'의 시나리오였다.

정 감독은 "이 작품을 쓸 때 마지막 남은 필사의 노력을 쏟는 기분이었다.

만약 딸이 볼 수 있는 단 하나의 작품만 남길 수 있다면 어떤 작품이어야 할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영화라는 꿈만 좇던 자신을 "'미나리'의 제이컵과 같았다"고 고백했던 그는 골든글로브 수상 직후 품에 안기는 딸을 "이 영화를 만든 이유"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나의 부모님의 강인함에 경의를 표하고, 나의 딸에게 선물이 될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가 머무는 순간을 반영하는 동시에 초월하기를 바란다"고 했던 정 감독의 바람은 쏟아지는 호평과 함께 현실이 되고 있다.

'미나리'에 출연한 배우들은 한결같이 정 감독에게 존경과 애정을 표했다.

윤여정은 "정이삭 감독이 우리의 주장이었고, 너무 멋있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과 다시 한번 시합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 나이에"라는 골든글로브 수상 소감을 밝혔다.

앞선 인터뷰에서는 정 감독이 모든 스태프에게 큰절을 가르쳐 자신에게 예의를 표한 순간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기도 했다.

배우 한예리 역시 정 감독 때문에 영화를 선택했다고 밝혔고, 스티븐 연도 연신 "대단하다"(awesome)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정 감독의 할리우드 차기작은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실사 영화다.

또 뉴욕과 홍콩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영화도 '미나리' 제작사인 플랜B와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