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 기업 활동 청산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 여전히 유효"

1974년 8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본사 폭파사건, 같은 해 10월 일본 미쓰이물산 본사 폭파사건, 역시 같은 해 12월 일본 대성건설 본사 폭파사건, 1975년 하자마구미 본사·오미야 공장 폭파사건.
1974년과 1975년 일본에서는 이처럼 일본 기업의 본사나 공장을 연속적으로 폭파한 사건이 벌어졌다.

1974년 8월 30일부터 1975년 5월 4일까지 총 9번의 폭파가 있었다.

이 사건을 벌인 것은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라는 일본의 무장 투쟁 그룹이었다.

영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한국 사회뿐 아니라 일본 사회에서까지도 잊힌 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행적을 좇아가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대학중퇴생, 한국 근현대사 전공 대학원생, 회사원 등으로 구성됐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 지배로 성장한 주요 기업들을 폭파하며 일제의 무반성과 무책임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을 요구했다.

피해국이 아닌 가해국 일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아를 비판하며 무장 투쟁을 펼쳤다.

'늑대' 부대, '대지의 엄니' 부대, '전갈' 부대까지 세 그룹이 제각기 활동했으며 1975년에 모두 체포돼 부대원들은 현재 수감 중 사망했거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소했거나 국제지명수배 중이다.

일본 전범기업에 폭탄 던진 그들…'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영화는 수년간 이들을 지원했던 인물을 인터뷰하고 수감 중인 사람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이들이 왜 그러한 테러를 벌였는지를 추적한다.

약 5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당시에는 폭력을 정당화하고 그로 인한 희생자 역시 '일제에 기생했다'라고 규정했던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부대원들은 폭력이라는 수단이 옳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후회함을 영화는 전한다.

전범 기업들에 일격을 가하고자 했던 이들의 목적은 정당했을지 몰라도 수많은 사상자가 나온 그 수단은 테러였다.

영화가 이들이 '폭력을 후회한다'는 점을 전하긴 하지만 결국 깊이 감정 이입하며 일종의 연민으로 바라본다.

일본 전범기업에 폭탄 던진 그들…'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
4일 언론시사회 직후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에 출연한 오타 마사쿠니 씨는 "1970년대 당시 세계 상황은 베트남 민중이 저항 등 폭력이라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지 않았던 시대"라면서도 "정치적인 자유가 있었던 일본에서 (무장 투쟁) 행동을 반복했던 것은 문제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오타 마사쿠니 씨는 늑대 부대원이었던 다이도지 마사시의 사촌 형이자 민족 식민지 문제 연구자다.

그는 일본에서 화상 연결로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 벌였던 행동의 의미는 높게 평가했다.

오타 씨는 "1970년대 일본에서 근대 일본의 식민지 문제에 대해 자각하거나 의식한 채로 정치적인 운동을 벌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며 "전후 일본의 반전 평화운동이 반성해야 하는 점을 제기했다는 것이 그들의 행동이 갖는 의미다"라고 강조했다.

현재는 거의 잊힌 이 사건에 대해 오타 씨는 "당시에는 폭탄을 동원했고 사망자도 많았기 때문에 사건의 충격이 상당히 컸지만, 45년 이상이 지나고 세대가 달라지면서 일본 사회의 기억에 남아있다고 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영화에 나왔듯 여전히 그들의 행동을 잊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많진 않지만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본 기업들이 다국적 기업의 일부로 활동하고 있고 이들의 전범 기업 활동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았다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우리가 제기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화를 연출한 김미례 감독은 영화의 시작에 대해 "아버지가 일용직 노동자였고, 그 이야기를 담아 영화를 제작하고 상영하던 때에 일본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한 분들을 많이 만났다"며 "그분들이 일본의 일용직 노동자 운동의 전신이 있는데, 그들이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이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오는 20일 개봉.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