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등 아이돌 프로듀서로 활약…6년 만에 정규앨범·지난달 전시회도
진보 "대중음악 기존 관념에 신랄한 물음표 던지고 싶다"
뮤지션 진보(JINBO·본명 한주현). 보통 그에겐 방탄소년단 '파이드 파이퍼', 샤이니 '닫아줘', 레드벨벳 '봐' 등 최정상 아이돌 그룹 곡의 프로듀서라는 수식어가 먼저 따라온다.

그러나 그런 수식어와 별개로, 싱어송라이터로서 진보가 만든 음악 또한 많은 R&B·힙합 팬들에겐 '믿고 듣는' 이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메이저와 언더그라운드를 오가며 견고한 존재감을 쌓아 올린 그가 다소 긴 공백 끝에 최근 자기 이름을 내걸고 정규 앨범을 선보였다.

지난해 12월 중순 발매한 정규 3집 '돈트 싱크 투 머치'(DON'T THINK TOO MUCH)로, 2013년 '판타지'(Fantasy) 이후 6년 만의 정규 앨범이다.

최근 한남동 작업실에서 만난 진보는 "그동안 제 팬들은 다른 사람 목소리로만 제 음악을 들어 왔는데, 제 목소리로 듣고 싶다는 요청이 계속 있었다.

6년 동안 미안했다"고 전했다.

"래퍼 스윙스가 저한테 '형 되게 할 말이 많은 사람이구나'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얘기를 듣고 좀 놀랐어요.

어느새 외부에서는 제가 음악을 만드는 건 저의 생각을 표현하거나 제 마음을 치유하려는 목적이라고 보지 않고 저를 직업 프로듀서로만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더욱더 공백이 너무 길었다고 생각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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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대중음악 기존 관념에 신랄한 물음표 던지고 싶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솔로 앨범 공백이 길어졌을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라는 앨범 제목과는 정반대로 그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고 한다.

그는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성공적으로 되는 모습을 보면서 조급해지고 그 스탠더드와 자꾸 경쟁하게 됐다.

그래서 마음 편히 쉽게 낼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런 생각들로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다는 그는 '생각을 끊어내는 연습'을 하면서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한 이 앨범을 완성해냈다.

"프로듀서, 아티스트 같은 명함 바깥에 있는 내 진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모나고 어둡고 또한 꽤나 바르고 빛나는 내 모습"이라는 앨범 소개 글 표현처럼, 복잡하게 교차하는 자기 안 양면성을 담았다.

"저는 모든 문제, 감추고 싶은 콤플렉스도 햇빛 아래 내놓으면 치유된다고 믿거든요.

제 안에 있는 치부라든지 부끄러운 내용 같은 것들을 처음 꺼내 봤어요.

"
블루스 록 스타일의 첫 트랙 '사랑꾼'에서 그는 성공에 대한 욕심을 털어놓으며 "아 자꾸만 아파 머릿속과 몸통 다/ 뭐가 대체 날 쥐고서 비트는 걸까"하고 독백하다 자전적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15살 때 영동중학교 교실에서 악마를 보고 얘기했어/ 내게 재능을 주면 내가 타고난 기쁨을 주겠다고"('사랑꾼' 중)
앨범과 동명 타이틀곡에서는 "몸과 머리가 서로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의 혼란스러움이 느껴진다.

진보 "대중음악 기존 관념에 신랄한 물음표 던지고 싶다"
이번 앨범에는 멀게는 10여년 전부터 작업한, 뚜렷한 개성의 열두 트랙이 담겼다.

원래 밴드 워크맨쉽(WRKMS)의 프로젝트였던 '사랑꾼'이나 OST로 만든 '눈을 감아도' 등 각기 나름의 '사연'도 있는 곡이다.

그는 "트렌드를 계산하거나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재고 따지고 한 흔적이 없다.

용기 있는 앨범"이라고 자부했다.

한국, 영국, 프랑스 등 음악적으로 교류한 여러 국적 친구들이 피처링에 참여했다.

새로운 음악적 시도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그는 이번 앨범을 "'백남준적인' 접근이자 첫걸음"이라고 소개했다.

백남준 예술을 관통하는 천진난만한 태도와 모든 기성 개념에 도전하는 시선을 통해 대중음악을 얽매는 '박스'를 의문시하고 싶다는 게 그의 말이다.

"아무리 장르가 발달하고 사운드가 좋아져도 '대중음악은 이런 것'이라는 '박스'는 너무 오랫동안 정해져 있고 보수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대중음악이 물론 대중을 위한 문화 장르지만 지나치게 실험에 소극적이었죠."
그런 맥락에서 진보는 형식화한 음반 홍보와 조금 다른 행사를 최근 마련했다.

지난달 17, 18일 성수동에서 새 앨범을 소개하는 전시회를 연 것.
가사 이야기를 잡지 형태로 풀어내거나, 벽에 설치된 MP3 플레이어로 설명을 읽으며 데모를 들을 수 있게 하거나, 세미나를 통해 작업 후기를 나누면서 입체적이고 '공감각적'으로 음악을 경험하게 했다.

과학 다큐멘터리에서 인간관계까지 "굉장히 전방위적으로" 음악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는 그는 최근에는 과거 한국 가요에서 영감을 얻은 리메이크 프로젝트 'KRNB1'과 'KRNB2' 시리즈를 차례로 선보이기도 했다.

그도 한때는 "최대한 미국 것을 잘 구현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사대주의자'였지만 주변인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한국 음악에 대한 시야가 바뀌었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스테이크 옆에 생선찜이 있고, 그 옆에 탕수육이 있는 식"이어서 싫다고 생각한 한국 음악에도 자부심을 갖게 됐다고.
"문화적으로 우리는 어떤 게 정찬인지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선입견 없이 자유롭게 여러 가지를 섞을 수 있는 거죠. 이제는 레시피가 많이 개발됐고, 이를 가지고 플레이팅 하는 솜씨도 많이 올라왔고요.

K팝이라는 음악이 장르로 부각될 만한 충분한 경쟁력과 근거가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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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대중음악 기존 관념에 신랄한 물음표 던지고 싶다"
실제로 그가 프로듀싱에 참여한 방탄소년단 등 대형 기획사 아이돌 음악은 현재 K팝 최전선이다.

세계적으로 히트한 방탄소년단 제이홉의 '치킨 누들 수프' 뒤에도 프로듀서 진보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프로듀싱한 '치킨 누들 수프' 에 어느 외국인이 비명을 지르다시피 하며 행복하게 반응하는(리액션) 영상을 보고 '짜릿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는 "내 손에서 만든 노래가 누군가에게 저 정도로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거의 영적인 체험이었다"며 "어떤 큰 사건에 참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전했다.

어느덧 10여년간 독립 레이블 '수퍼프릭 레코드'를 꾸린 그는 앞으로도 "계속해왔던 것처럼 개념 자체, '박스' 자체에 대한 물음표를 신랄하게 많이 날리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너무 생각하지 말자는 새 앨범 주제처럼 "매 맞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가는 해"가 되고 싶다고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활동명 때문에 그가 숱하게 들어봤을 법한 질문을 꺼냈다.

뮤지션으로서 '진보'한다는 건 무엇일까.

"저는 그 단어가 정말 좋은 단어라고 생각해요.

진보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거잖아요.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런 의미에선 우리는 모두 진보적인 사람이죠. 정치적인 개념으로 들어왔을 때 너무 의미가 좁아지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계속 비전을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하고, 꿈꾸고 행동하고… 그게 저는 진보라고 생각해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