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50% 돌파 여부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KBS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  /KBS 제공
시청률 50% 돌파 여부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KBS 드라마 ‘하나뿐인 내편’. /KBS 제공
“TV를 틀면 온통 ‘별주부전’ 얘기다.”

요즘 지상파 드라마를 본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작품들에 하나같이 ‘간(肝)’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KBS 2TV의 주말극 ‘하나뿐인 내편’과 수목극 ‘왜 그래 풍상씨’, 1TV 일일극 ‘비켜라 운명아’엔 모두 간 이식이 주요 사건으로 배치됐다. 한 방송사에서 같은 기간 방영하는 세 작품이 모두 간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소재의 역할도 동일하다. 팽팽하게 대립하던 갈등을 극적으로 봉합하는 수단이다. 과거 많이 본 드라마들과 비슷한 전개다. 다만 질환의 종류가 바뀐 정도일 뿐.

진부한 설정에도 시청률은 높다. ‘하나뿐인 내편’의 시청률은 49.4%에 달한다. 2010년 방영된 KBS ‘제빵왕 김탁구’ 이후 9년 만에 50% 돌파를 앞두고 있다. 지난 14일 종영한 ‘왜 그래 풍상씨’는 22.7%, ‘비켜라 운명아’도 22.2%를 기록했다. 낮은 시청률 때문에 골치를 앓던 지상파로선 보기 드문 성공이다. 하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간 이식으로 얻어낸 관심에 냉소를 보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상파가 콘텐츠 전쟁에 임하는 태도 때문이다.

오랜 시간 지상파는 문화권력을 누렸지만 가열되는 콘텐츠 전쟁 속에 영토를 빠르게 잃었다. 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OTT) 플랫폼의 공세가 강화됐고, 국내 케이블·종합편성 채널도 급증했다. 대중의 시선은 굳이 지상파에 머물 이유가 없어졌다. 좋은 콘텐츠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로든 향한다. 그런데 위기 속에서도 지상파는 과거의 성공방식에 집착하는 강력한 회귀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전략이 일시적 효과를 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계속될까. 그들은 자문해 봐야 한다. 최근 거둔 성공이 ‘독이 든 성배’는 아닐지.

지상파의 위기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대중의 관심과 광고를 다른 채널과 플랫폼에 빼앗겼다. 이를 막기 위해 지상파는 ‘콘텐츠 강화’를 내세우고 있다. 특히 가장 흡입력이 높은 장르인 드라마에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KBS는 계열사와 함께 설립한 제작사 ‘몬스터유니온’의 드라마 부문을 강화하기로 했다. SBS는 드라마본부를 독립시켜 다음달 드라마스튜디오를 출범시킨다. 플랫폼 확장도 고민하고 있다. 넷플릭스, 유튜브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SK텔레콤과 손잡고 OTT 통합법인도 세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지금까지 방영된 콘텐츠엔 특별한 변화가 없다. 스릴러 등 실험적인 장르물을 일부 선보이고 있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기존 공식을 따라간다. MBC의 ‘슬플 때 사랑한다’는 성형 수술로 얼굴을 완전히 바꾸는 ‘페이스오프’를 또 소재로 꺼내들었다. 지난달 종영한 SBS ‘황후의 품격’은 성폭행, 살인 등 자극적인 설정들로 가득했다. 고정 시청자층인 50~60대마저 놓치게 될까 봐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뒷걸음질에 10~30대의 이탈은 가속화하고 있다. ‘킬빌’ 등 10대 중심의 예능을 만들며 애쓰고 있지만 한 번 떠난 관심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콘텐츠 전반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지상파에 대한 고정관념은 쉽게 깨지지 않을 듯하다. 젊은 층의 관심을 되돌리지 못한다면 지상파는 어디서 존속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까.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의 예언이 현실화되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는 201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리퍼블리카 콘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향후 10년 안에 지상파 방송 등 TV는 종말을 고할 것이다.” 아직 쉽게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3년이 흐른 현재, 그때보다 시곗바늘이 더욱 빨리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BBC 등 견고하게만 보이던 해외 대표 지상파마저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 지상파 방송사들도 생존의 길을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독이 든 성배의 유효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을 테니까.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