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430억원이 투입된 tvN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제작비 430억원이 투입된 tvN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
‘기록의 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2018년 국내 콘텐츠 업계는 화려한 숫자들로 채워졌다.

영화 ‘신과함께’는 1편인 ‘죄와 벌’, 2편 ‘인과 연’ 모두 큰 성공을 거뒀다. 각각 1441만 명, 1227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역대 최초 ‘쌍천만’ 기록이었다. 두 편에 총제작비 400억원이 투입됐고 매출은 1000억원을 넘어섰다. 북미, 호주, 동남아시아 등에서도 흥행했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엔 국내 드라마 중 최고 제작비인 430억원이 들어갔다. 시청률은 지상파를 포함, 전 채널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엔 한국 작품 중 최고 금액인 약 300억원에 방영권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요계의 기록은 상상 이상이다. 아이돌 ‘방탄소년단’이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의 팬클럽 ‘아미’는 전 세계에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다. 증권가에서도 기록이 이어졌다. 시가총액 1조원을 넘어선 엔터테인먼트사가 두 번째로 나왔다. SM엔터테인먼트 이후 6년 만이다. 일본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돌 ‘트와이스’ 등이 소속된 JYP엔터테인먼트다.

기록들의 행진 속에서 느낄 수 있다. 국내 플레이어들의 ‘체급’이 달라졌단 것을. 몸집을 최대한 키우려 많은 투자를 하기도 했고 예상을 뛰어넘어 체급이 올라간 사례도 있다. 체급이 달라지며 거둬들인 성과도 커졌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의 중심을 향한 진격이 시작됐다.

체급이 커진 것은 국내 대표 기업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올해 국내 콘텐츠 매출은 출판을 제외하곤 전 부문에 걸쳐 골고루 성장했다. 전체 규모는 작년보다 5.2% 늘어난 116조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넷플릭스 진출 등으로 ‘메기 효과(막강한 경쟁자의 등장으로 잠재력이 극대화되는 효과)’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는 긍정적 신호다.

2019년, 다가오는 새해엔 판이 더 커질 것 같다. 콘텐츠 시장에서 ‘거인’들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넷플릭스, 월트디즈니 등이 내세운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OTT) 플랫폼의 공습이 내년부터 대대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도 한판 승부를 벼르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글로벌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반드시 이른 시일 내 (경쟁자가 따라오지 못하는) 글로벌 ‘초격차’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카오는 최근 콘텐츠 사업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김성수 전 CJ E&M 대표를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국내 업체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마음 같아선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을 제대로 만들어 해외로 진출하고 싶은 곳이 많을 것이다. 한 번에 대량의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으니 글로벌 기업이 되기 위한 지름길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론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해외에서 플랫폼을 관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또 플랫폼에, 양질의 콘텐츠에 자막과 더빙 등을 입혀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지상파 3사가 미국에서 ‘코코와’라는 OTT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긴 힘든 실정이다.

앞으론 더 힘겨운 싸움이 될 것 같다. 체급을 키운 거인들은 결코 쓰러지지 않을 ‘체력’과 ‘전략’까지 갖춰야 할 것 같다. 켄 레러 허핑턴포스트 공동창립자의 얘기가 떠오른다. “비행을 하면서 동시에 비행기를 고쳐야 하는 상황이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부딪히고 있는 경쟁 회사들의 절박감을 드러낸 말이다. 이런 절박함이 빚어낼 내년 전쟁의 결과가 궁금해진다. 이에 따라 국내 콘텐츠 업계의 미래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새로운 르네상스이거나, 아니면 깊은 암흑기이거나.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