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대호황기에 적신호를 발견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 분)은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낸다. 정부는 뒤늦게 비공개로 대책팀을 꾸린다. 경제 위기를 예감한 종합금융회사의 ‘금융맨’ 윤정학(유아인 분)은 역으로 베팅해 큰돈을 거머쥘 기회로 보고 바로 사표를 던진 뒤 투자자를 모은다. 상황을 모르는 작은 기계공장 사장이자 평범한 가장인 갑수(허준호 분)는 대형백화점과 어음거래 계약을 트고는 행복감에 젖는다. 그러나 외화 잔액이 바닥을 드러내면서 국가부도까지 1주일밖에 남지 않는다. 정부 대책팀은 위기 대응방식을 놓고 충돌한다. 재정국 차관(조우진 분)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한시현은 IMF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그대로 수용해선 안 된다고 맞선다.

실화가 전하는 감동…균형 잃은 인물묘사는 옥에 티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은 초유의 경제 위기에서 각 주체의 대응방식을 포착한다. 정부는 경제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을 공개하지 않아 서민들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다. 정부의 무능은 물론, IMF 구제금융 당시의 협상력도 비판한다. 20여 년 뒤 가계부채 폭탄으로 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도 경고한다.

영화는 인물 묘사에서 균형감을 잃으며 완성도가 다소 떨어졌다. 재정국 차관을 ‘갑질대표’로, 한시현을 ‘정의의 사도’로 그린 게 대표적이다. 차관은 또 개인적인 편견과 친분을 앞세워 대기업 후계자와 밀착관계를 맺은 것으로 묘사했다. 당시 IMF 구제금융이 거의 유일한 출구였다는 점에서 차관도 진지한 고뇌 끝에 구제금융 신청을 결정한 것으로 그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