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극장가에는 한국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흥행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강동원이 살인 누명을 쓴 채 쫓기는 ‘골든 슬럼버’와 한국형 탐정 시리즈 ‘조선명탐정:흡혈괴마의 비밀’, 할리우드 최초로 흑인 슈퍼히어로를 내세운 ‘블랜 팬서’가 대표작이다. 여기에 컴퓨터그래픽(CG)으로 창조한 곰 캐릭터를 앞세운 ‘패딩턴2’가 복병으로 뛰어들었다. 연휴 기간 가족 관객을 얼마나 모을지가 흥행의 관건이다. 이 밖에 사극 ‘흥부:글로 세상을 바꾼 남자’와 판타지 ‘염력’ 등도 선보인다.
블랙 펜서
블랙 펜서
블랙 팬서

마블의 만화원작을 옮긴 히어로물이다. 흑인이 인류의 구원자이자 첨단문명의 건설자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혁신적이다. 아프리카 첨단문명국 와칸다의 젊은 군주 티찰라가 쇄국주의를 버리고 자국의 우수한 기술을 인류를 위해 개방하려고 한다. 하지만 고전소설 ‘햄릿’처럼 사촌과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권력 투쟁을 거쳐야만 하는 이야기다. 아프리카의 야생 환경과 대비되는 와칸다의 기술문명이 눈길을 끈다. 충격 에너지를 흡수해 희귀금속 비브라늄으로 만든 슈트에 저장했다 발산하는 게 신선하다. 버추얼 전투기와 최첨단 전투화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무기가 즐비하다. 광안리, 자갈치시장 등 부산에서 촬영한 장면들도 눈길을 끈다. 한글 간판이 즐비한 수산시장과 번화가에서 카체이싱을 펼친다. 연출자인 라이언 쿠글러 감독뿐 아니라 티찰라 역 채드윅 보스만 등 주요 배역진이 흑인이다. 오는 4월 개봉 예정인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의 전투 장면이 와칸다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만큼 ‘예습’ 차원에서 기다리는 팬들도 많다.
골든 슬럼버
골든 슬럼버
골든 슬럼버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에 수록한 ‘단잠’이란 뜻의 우정에 대한 노래다.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 이사카 고타로가 이 곡을 모티프로 쓴 동명 원작소설을 영화화했다. 순진한 택배기사 김건우(강동원 분)가 돌연 대통령 후보 암살자로 누명을 쓰고 쫓긴다. 전직 비밀요원 김의성과 학창시절 밴드 친구였던 김성균, 한효주 등의 도움을 받게 된다. 광화문 한복판에서 차량 폭발 테러가 일어나는 등 볼거리를 주면서도 관객들을 따스한 추억의 현장으로 소환한다. 욕망과 순수의 차이를 스릴러 형식으로 보여주는 작품. 강동원이 1인2역으로 등장하는, 강동원의 영화다. 노동석 감독.
조선명탐정
조선명탐정
조선명탐정:흡혈괴마의 비밀

자타공인 최고의 명탐정 김민(김명민 분)과 그의 조수 서필(오달수 분)의 유머와 해학이 이끌어가는 사극이다. 강화도에서 멀쩡한 사람들이 불에 타 죽자 명탐정 일행은 사건을 해결하러 나선다. 조선시대판 뱀파이어를 연상시키는 초능력 여인 월영(김지원 분)이 가세하며 이야기는 판타지와 공포를 넘나든다. 1, 2편에 비해 추리적 요소는 약화됐지만 웃음과 판타지를 강화했다. 서구의 뱀파이어와 동양의 한(恨)을 믹스해 상상의 나래를 편다. 김석윤 감독.

‘패딩턴 2’

영국의 국민동화 ‘패딩턴 베어’를 토대로 한 코미디다. 1편에서 영국 런던의 한 가정에 정착한 곰돌이 패딩턴이 도둑질 누 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히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패딩턴의 귀여운 몸짓과 요절복통 사건들이 관객을 쉴 새 없이 웃긴다. 패딩턴을 식구로서 아끼는 브라운씨 가족의 애정, 한없이 착하고 순수한 패딩턴의 마음 씀씀이가 웃음에 더해 큰 교훈과 감동을 준다.

관객의 기대와 어긋난 영화들

사극 ‘흥부:글로 세상을 바꾼 남자’는 조선 헌종 때를 배경으로 한 정통 시대극.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흥부전’을 바탕으로 하지만 실제로는 세도정치가 형제 이야기라는 상상을 스크린에 옮겼다. 관객들은 원작의 해학과 풍자를 기대하지만, 영화는 백성이 세상의 주인이란 무거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급급하다. 김주혁의 유작.

‘염력’은 총제작비 130억원을 투입해 화제를 모았지만 젊은 층의 외면으로 흥행세가 꺾였다. 류승룡이 갑자기 생긴 초능력을 이용해 딸 심은경과 이웃들을 구하는 코믹판타지. 그러나 초능력을 시종일관 용산참사를 연상시키는 철거민을 위해서만 쓰면서 통쾌함을 기대했던 관객들을 실망시켰다. 초능력으로 사람과 물건을 움직이는 등 볼거리를 주지만, 사회현실을 비판하는 메시지가 너무 강한 게 오히려 거부감을 키웠다는 평가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이 연출했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