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가 배경인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tvN 제공
교도소가 배경인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tvN 제공
처음 접하는 세계. 궁금하긴 해도 왠지 두렵다. 폐쇄적인 공간은 갑갑함마저 느끼게 한다. TV 드라마 속 교도소 얘기다. 아예 이 장소를 주무대로 한 드라마가 최근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이 그 프로그램이다.

교도소란 소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그동안 TV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내에선 더욱 그랬다. 영화도 ‘7번방의 선물’ 정도였다. 사회적 금기는 작품을 만들고 바라보는 심리적 금기까지 파생시키기 때문이다. 이 작품 방영 소식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많았던 건 당연했다. 새로운 소재라고 해도, ‘응답하라 1997’ 등 ‘응답하라’ 시리즈를 성공시킨 신원호 PD 작품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데 예상 밖 결과가 펼쳐졌다. 낯선 세계를 둘러쳤던 장벽은 허물어졌고, 대중은 오히려 익숙함을 느꼈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사는 그들에게서 인생의 단면을 발견한 것일까. 이 작품은 지난 18일 11%의 시청률을 올리며 같은 시간 방영된 지상파 3사 드라마를 모두 제치는 새로운 기록을 쓰며 종영했다.

히트 콘텐츠의 새로운 공식이 생겨나고 있다. 자주 사용되는 소재에 약간의 차별화를 시도한 작품이 이전까지는 큰 인기를 얻었다. 《히트 메이커스》의 저자 데릭 톰슨이 제시한 ‘친숙한 놀라움’에 해당한다. 하지만 오디션, 먹방 등 소재의 지나친 중복에 사람들은 시큰둥했다. 제작자들은 잘 접하지 못한 소재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새롭다는 것만으론 통하지 않는다. 색다른 소재를 통해 보편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낯선 익숙함’을 가진 작품이야말로 다르게 다가간다. 기존 작품보다 파급력도 크다.

새로움을 향한 욕구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접근으로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교도소를 다룬 예능 ‘착하게 살자’도 지난 19일 JTBC에서 처음 방영됐다. ‘보그맘’ ‘로봇이 아니야’ 등 로봇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잇따라 나왔다.

낯선 소재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잘 모르는 얘기인 만큼 시청자의 개입과 판단이 이뤄질 여지는 줄어든다. 이를 보완하는 방법은 익숙한 감정선을 따르는 것이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슬기롭게’ 조화를 이뤄냈다. 포기를 모르던 최고의 야구선수 제혁이 여동생을 지키려다 과잉방어 혐의를 받고 수감되는 설정은 특히 그렇다. 신화처럼 ‘영웅의 고난과 귀환’이란 주제와 서사를 그대로 따른다. 세상의 온갖 군상을 집약해 절묘하게 캐릭터로 만들어 내기도 했다. 성소수자이며 마약에 손을 대게 되는 ‘해롱이’, 아들에게 간을 떼어주고도 외면당한 도박꾼 ‘문래동 카이스트’ 등이 대표적이다. 두 캐릭터는 아웅다웅하며 웃음을 주고, 안타까움도 자아낸다. 주·조연 대부분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이었지만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또 매회 라디오 멘트와 친숙한 음악을 내보내며 이곳 역시 ‘사람 사는 공간’이란 메시지를 준다. 교도소를 미화한다는 우려를 넘어선 것도 이 모든 요소를 잘 버무려 낸 결과다.

반면 동일한 소재를 다룬 ‘착하게 살자’는 첫 회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배경부터 실제 교도소다. 출연자들이 입소 전 항문 검사를 하는 장면도 담겼다. 마약, 담배 등을 숨겨 반입하는 것을 막는 과정을 소개한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새로움은 공감이 아니라 자극만을 남길 뿐이다.

앞으로 방송가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 같다. 소재의 경쟁 속에서 ‘새로움’과 ‘익숙함’을 함께 전달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얼마 전 한국콘텐츠진흥원 행사에 참석한 나영석 PD의 조언이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희경 기자의 컬처 insight] 요즘 히트 콘텐츠의 공식 '낯설지만 익숙함'
그는 회의 때 동료들에게 “한 명씩 의견을 말해보라”는 말을 가급적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각 잡고 묻는 질문엔 뻔한 대답만 나오기 때문이다. 대신 회의 시작 전 잡담하는 시간이 상상력의 바탕이 된다고 한다. 주된 질문은 “주말에 뭐 했어?”다. 그러면 “친구랑 방 탈출 카페에 갔는데 신기하고 재밌었다”라는 식의 답이 나온다. 자신의 연령대에서 나오지 못하는 색다른 경험과 아이디어를 구하는 동시에 대중이 흥미를 느끼는 포인트를 잡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낯선 길을 걸어가도 좋지 않을까. 늘 가던 길처럼 담담하고 익숙한 기분으로.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