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씽: 사라진 여자' 엄지원
'미씽: 사라진 여자' 엄지원
두 명의 여배우와 여성 감독이 함께 만든 '여성'에 관한 영화 '미씽'.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충무로에서 이 영화가 유독 눈에 띄는 건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영화라는 점이다.

한국의 영화 시장 규모는 세계 10위권 수준까지 성장했지만 여전히 여성과 노인(시니어) 등이 설 자리는 많지 않다. '미씽' 역시 여성을 다룬 영화라는 점에서 개봉까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 영화 주연을 맡은 배우 엄지원은 이제는 여성들의 영화가 주목받아야 할 때라며, '미씽'이 잘 돼야 하는 이유를 역설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에 위치한 한 까페에서 엄지원을 만나봤다.

◆ "'여자라서 안돼' 반대 의견 많았죠"

"'미씽'은 시나리오가 좋다고 충무로에 소문이 났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투자를 안 했죠. '여자 영화는 안돼'라는 이유에서였죠. 결국 메가박스 플러스엠이 맡으면서 개봉하게 됐습니다."

지난 21일 열렸던 '미씽' 언론시사회 이후 호평이 쏟아졌다. 영화적인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사회적 메시지를 건드린 점이 적중했다. 이 영화는 엄마와 여자로서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제작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어서일까. 시사회 후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엄지원은 흥행에 대한 기대 너머로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시사회 때는 영화를 온전히 볼 수 없었어요. 1년 동안 힘들게 만들었는데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에 대한 상념에 사로잡혀 있었죠. 영화 만드는 과정에서 반대 의사들이 많았던 것 만큼 긍정적인 반응을 접하니 어리둥절한 기분이네요."

엄지원은 그동안 '더 폰'(2015),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4), '소원'(2013) 등의 영화를 통해 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런 그에게도 '미씽'은 연기 인생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영화다. 모성애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결국 여성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으로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중한, 의미 있었던 작품 이예요. 영화가 단순하게 아기를 찾고, 모성애가 극한에 달하는 모습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미씽'은 엄마도 여자이고 사람이라는 주제의식을 내포하고 있죠."

◆ "촬영 내내 감정 힘들어 후회도 했죠"

극 중 언론홍보대행사 실장인 지선(엄지원 분)은 이혼 후 아이 다은을 홀로 키운다. 중국인 보모 한매(공효진 분)는 야근이 일상인 그의 삶에 소중한 존재다.

그러던 어느 날 한매와 다은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아이를 잃어버렸지만 남편도, 경찰도, 심지어 변호사까지 지선의 말을 믿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에서 지선은 주도적으로 아이를 찾기에 나선다.

'미씽'에서 엄지원은 감정의 진폭을 조절하며 처음의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강단있게 끌고 나간다. 감정을 많이 써야 하는 영화인만큼 그가 견뎌야 할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상당했다.

"아이가 납치된 상황에서도 이성적이어야 했어요. 감정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여자로 설정했거든요. 때문에 슬픔을 많이 드러내서는 안됐고 농도 조절이 필요했죠. 촬영하면서 너무나 어려웠고 ‘이걸 왜 하기로 했지’라는 후회도 했습니다."

지선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숨이 가빠온다. 휴대전화를 확인할 틈조차 없다.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는 순간 중요한 단서를 놓칠 만큼 쫀쫀하고 치밀하게 이야기가 흘러간다.
'미씽: 사라진 여자' 엄지원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제공
'미씽: 사라진 여자' 엄지원 /사진=메가박스 플러스엠 제공
러닝타임 내내 엄지원은 하늘하늘한 보랏빛 원피스에 운동화를 신고 치열하게 달린다. 추적 장면에서 등장하는 이 원피스는 총 7벌로 제작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찢김과 오염의 정도가 달라야 했기 때문이다.

"커리어우먼 지선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아이가 실종된 것을 알게 되죠. 후반부로 갈수록 외모에 신경쓸 겨를 없이 아이를 찾아 헤매야 했습니다. 상황과 맞지 않는 의상을 선택해 지선을 옥죄는 순간과 찰나의 다급함을 세밀하게 그리고 싶었어요."

◆ "효진이와는 '환상의 콤비' 였어요"

'미씽'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배우 공효진이다. 엄지원과 공효진은 태어난 곳도 자란 환경도 다르지만 결국 동일한 고통을 겪는 두 여자 지선과 한매의 모습으로 호흡을 맞췄다.

엄지원은 '환상의 콤비'라고 할 정도로 공효진과의 호흡에 만족했다.

"지방 촬영 내내 효진이와 방을 같이 썼어요. 누가 영화인 아니랄까봐 둘이 나누는 대화는 영화로 시작해 영화로 끝이 나더군요. 작품에 대한 고민을 아낌없이 나눌 수 있어 좋았어요."

그는 영화 '미씽'이 밥을 먹다가도 문득 생각나는, 여운이 남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남자들 틈바구니 속에서 여성 영화가 주목받을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남자들의 작품이 쏟아졌고, 이제 여성 영화들이 주목받을 시기이지 않을까요. '미씽'은 개인적으로 소중한 작품인 만큼 책임감도 크게 느끼고 있어요. 좋은 선례가 됐으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발 잘 됐으면 좋겠어요."

'미씽: 사라진 여자'는 오는 30일 개봉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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