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멍군 대결로 중견 여배우 존재감 올려

장희빈과 장녹수가 만났으니 사달이 나도 큰 사달이 날 수밖에.

우열을 가리기 힘든 '요부'이자 사랑에 목숨을 건 두 미녀가 붙으면 1만 볼트 이상의 고압 전류가 화면에 '좌르르' 흐른다.

"반경 50m 내 접근금지"라는 자막 안내라도 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피하기는커녕 화면 가까이 더 다가가 이 두 '언니'들의 대결에 몰입한다.

언니들의 장군, 멍군 대결을 지켜보는 게 이렇게 재미있고 시원한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SBS TV 수목극 '질투의 화신'의 이미숙(57)과 박지영(48)이 예상하지 못했던 즐거움을 선사하며 중견 여배우의 존재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 예쁜 왕언니들의 화끈한 한방

'질투의 화신'의 코미디는 여러 사람이 고루 책임지고 있지만, 이미숙과 박지영이 보여주는 화끈한 코미디도 절대 놓쳐서는 안될 일품요리다.

'질투의 화신'은 제목처럼 등장인물들이 질투라는 감정에 몸부림치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리는데, 이성간은 물론이고, 부모자식간, 직장동료간, 죽마고우간의 질투가 고루 다뤄진다.

이미숙과 박지영은 방송사 입사동기 동료이자, 한 남자(윤다훈 분)와 잇따라 결혼한 기이한 인연으로 엮인 계성숙과 방자영을 각각 연기한다.

이들은 여고생 빨강이를 두고 낳은 정, 기른 정을 다투는 사이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계성숙과 방자영이 차례로, 그것도 6개월 만에 바통터치를 하며 결혼했던 남자와 역시 잇따라 일찌감치 이혼했고, 그 남자가 심지어 죽은 것으로 처리해 이 두 중년의 골드미스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미모나 실력, 재력 등 어느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이 두 언니들은 거침없고 당당하고 화끈하다.

대개 화사한 청춘들이 화면에서 뛰어놀아야 눈이 호강하는 법인데, 이 두 왕언니들이 등장하면 그와 같은 효과가 난다.

언니들은 여전히 예쁘고, 멋진데 심지어 화끈하니 더할 나위가 없다.

모성애로 호소하고 눈물짓는 장면조차 이 두 언니는 스타일이 남다르다.

딸을 위해서는 바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무릎도 꿇어버리고, 승리의 기회가 생기면 바로바로 잡아버린다.

이들에게 요즘 청춘들이 앓는 '결정 장애'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들의 행보에서 커브길은 없다.

오로지 직진하는 '돌직구'만 있으니 웃자고 하는 코미디라고 해도 속이 뻥 뚫린다.

◇ 장희빈과 장녹수의 20~30년 후의 모습

이미숙과 박지영은 국내 사극의 인기 캐릭터이자, 미인을 상징하는 두 인물인 장희빈과 장녹수 출신이다.

방송사가 인정한 '정통 미인'인 이 둘은 또한 나란히 미인대회 출신이기도 하다.

1978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에서 인기상을 받으며 연예계에 데뷔한 이미숙은 장희빈과 장녹수를 잇따라 연기하며 화려한 20대를 보냈다.

그는 1981년 MBC '여인열전 장희빈'에서는 장희빈을 맡아 숙종 역의 유인촌과 함께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1984~1985년 MBC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에서는 장녹수를 연기했다.

당시 연산군은 임영규였다.

1989년 미스 춘향 선발대회에서 선으로 입상하며 연예계에 데뷔한 박지영은 1995년 KBS '장녹수'의 타이틀 롤을 맡아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경쟁사인 SBS에서 대박 히트작 '모래시계'를 방송하던 때였음에도 박지영은 특유의 매력으로 연산군 역의 유동근과 함께 '장녹수'가 25% 전후의 시청률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때 그 시절의 장희빈과 장녹수가 '질투의 화신'에서도 불에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사랑을 향해 돌진하니 짜릿하다.

내숭? 그런 거 모른다.

'밀당'? 그런 거는 애들이나 하는 거다.

계성숙과 방자영이 셰프 김락(이성재)을 놓고 꾼 동상이몽과 벌인 육탄돌격은 중년의 욕망과 사랑을 솔직하면서도 경쾌하게 그려내며 젊은 시청층도 사로잡았다.

"우리가 나이가 몇인데…"라며 남 눈치 안보고 김락을 향해 달려나가던 이들은 김락이 '무성욕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곧바로 "네가 가져"라며 서로 양보(?)하는 모습으로 배꼽을 잡게 했다.

미모를 꾸준히 관리한 것 못지않게 연기력도 탄탄하게 쌓아올린 두 배우는 이제는 조연으로 물러났지만, 핀셋 같은 섬세하고 강렬한 연기로 주연에 밀리지 않고 화면을 장악한다.

'질투의 화신'의 특성상 과장된 상황과 연기가 이어지지만, 이미숙과 박지영은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이를 온몸으로 소화해낸다.

코미디 센스로 무장한 이 두 예쁜 언니의 섹시한 매력이 가을밤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