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삼시세끼·꽃보다 할배…tvN 10년, 이젠 '파워 채널'
“며칠 전에 2008년 7~8월 tvN의 광고 매출을 봤는데 월 매출이 지금의 7분의 1에 불과하더군요. 격세지감을 느꼈죠.”

이덕재 CJ E&M 미디어콘텐츠부문 대표는 지난 28일 열린 tvN 개국 10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리를 함께한 이 회사 이명한 tvN 본부장은 “2011년만 해도 일반인 출연자를 섭외할 때 tvN이 뭐 하는 곳인지부터 설명해야 했는데, 이제는 수많은 애청자를 확보한 채널이 됐다”고 거들었다.

이들이 입을 모아 얘기한 ‘격세지감’은 빈말이 아니다. 2006년 10월9일 개국한 케이블채널 tvN은 출범 10년 만에 지상파 못지않은 위상을 확보했다. 전도연 김혜수 고현정 공유 등 스타들이 모두 안방극장 복귀작으로 tvN 드라마를 택했다. 김은숙 박지은 등 유명 작가들도 tvN과 차기작을 작업 중이다. 이런 ‘폭풍 성장’의 동력은 단연 콘텐츠다.

기존 방송 문법 벗어난 차별화로 승부

케이블채널 tvN의 화제작들. ‘응답하라1988’(왼쪽부터 시계방향), ‘시그널’, ‘막돼먹은 영애씨’, ‘꽃보다 누나’, ‘미생’, ‘또 오해영’, ‘삼시세끼’, ‘SNL코리아’.
케이블채널 tvN의 화제작들. ‘응답하라1988’(왼쪽부터 시계방향), ‘시그널’, ‘막돼먹은 영애씨’, ‘꽃보다 누나’, ‘미생’, ‘또 오해영’, ‘삼시세끼’, ‘SNL코리아’.
개국 초기 tvN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프로그램을 내세웠다. 귀신과 빙의 등을 소재로 한 ‘리얼스토리 묘’, 여성 출연자들이 노출이 심한 옷차림으로 율동을 선보인 ‘티비엔젤스’ 같은 프로그램이 그랬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지상파가 시도할 수 없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뤘다.

몰래카메라로 일반인의 불륜 현장을 급습하는 형식의 페이크 다큐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은 당시 최고 시청률 4.8%를 기록했지만, 전반적인 시청률은 시들했다.

개국 첫해에만 방송위원회로부터 16차례나 징계를 받았다. 채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쌓여 광고 매출에까지 타격이 왔다.

콘텐츠의 방향을 틀었다. 선정성 대신 기존 포맷을 살짝 비트는 식으로 지상파와 차별화를 꾀했다.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는 착하고 고운 ‘캔디’ 대신 억척스러운 성격의 30대 직장인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기존 드라마엔 없었던 다큐멘터리식 내레이션과 영상 기법을 활용했다. ‘현장토크쇼 택시’는 연예인의 수다 공간을 스튜디오에서 달리는 택시 안으로 옮겼다. 이례적으로 인기를 끈 이들 프로그램은 2007년부터 지금까지 방송 중인 장수 프로그램이 됐다.

‘미생’ ‘응답하라’ ‘삼시세끼’ 히트

미생·삼시세끼·꽃보다 할배…tvN 10년, 이젠 '파워 채널'
tvN은 2011년 ‘TV를 바꾸는 TV’로 슬로건을 바꾸고 ‘탈(脫)케이블화’를 선언했다. 지상파에서 유명 PD를 대거 영입한 것이 이때부터였다.

콘텐츠 혁신을 위해 조직 분위기도 유연하게 바꿨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김원석 PD는 흔한 연애 이야기 없이 특정 직군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 ‘미생’과 ‘시그널’로 호평받았다. 나영석 PD는 ‘꽃보다 할배(꽃할배)’ ‘꽃보다 청춘’ 시리즈로 떴다. ‘삼시세끼’는 내부에선 큰 기대를 받지 못했지만, 방영 후 케이블 예능 중 최고 시청률(13.3%)을 보였다.

케이블TV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18.8%)을 기록한 ‘응답하라’ 시리즈는 예능 전문인 신원호 PD가 ‘예능형 드라마’를 제작해보겠다고 제안해 성사됐다. 이 본부장은 “프로그램 기획이나 소재 선정 때 자율성을 가장 중시한다”며 “각자 기획한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개발할 기회를 준 것이 지금의 콘텐츠 경쟁력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향후 10년 키워드는 글로벌·디지털”

이 대표는 “앞으로 10년은 유럽이나 북미까지 시장을 확대하도록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만한 글로벌 콘텐츠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포맷 수출입에도 공을 들이는 이유다. 지난 8월 종영한 드라마 ‘굿와이프’와 오는 11월 방영을 앞둔 ‘앙투라지’는 모두 해외 유명 드라마의 리메이크작이다. ‘꽃할배’는 미국에 포맷을 수출해 현지에서 9월 중순까지 시즌1을 방영했고, 최근 시즌2를 제작하기로 확정됐다. 국내 예능프로그램 사상 최초다.

10월에는 세계적인 제작사 엔데몰샤인그룹과 공동 제작한 예능프로그램 ‘소사이어티 게임’을 tvN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포맷 수출을 염두에 둔 프로그램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시즌4를 방영한 예능프로그램 ‘더 지니어스 게임’ 등의 포맷 수출을 준비 중”이라며 “지난 5월 설립한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 등을 통해 글로벌 포맷 개발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