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범죄의 여왕'(이요섭 감독)은 총 제작비가 7억5천만 원인 저예산 영화지만 소재와 연출, 연기의 참신함 덕분에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오지랖 넓은 아줌마(박지영)를 중심으로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범죄 스릴러라는 점과 요즘 충무로에서 뜨는 영화창작 집단 '광화문시네마'의 세 번째 작품이라는 점도 주목을 받았다.

지난달 25일 스크린 266개, 상영횟수 637회로 출발했을 때 만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개봉 일주일 만에 상황은 달라졌다.

스크린 수가 96개(상영횟수 129회)로 뚝 떨어지더니 개봉 10일째인 이달 3일에는 전국적으로 스크린 수가 40개로 줄었다.

상영횟수도 62회에 불과해 극장당 1회, 많아야 2회가 상영 중이다.

그나마 이른 아침이나 심야 시간대 배정돼있다.

4일 현재 누적 관객은 4만427명. 손익 분기점인 25만~30만 명을 따라잡으려면 멀었지만, 다음 주말까지 극장에 내걸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이 영화의 김보희 PD는 "처음 개봉 때부터 조조나 심야 등에 배치되면서 좌석점유율이 높지 않았다"면서 "좌석점유율이 높지 않다 보니 극장들이 개봉 나흘 만에 일반관 상영을 중단했다"고 하소연했다.

처음부터 관객들의 발걸음이 뜸한 이른 아침이나 심야 시간대 교차 상영되면서 좌석점유율 저하→상영관 감소→관객 수 감소 등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김 PD는 "예산이 적고, 유명 배우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루 이틀 만에 대부분의 극장이 스크린에서 내리는 것은 관객의 선택권을 철저히 무시하고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25일 개봉한 한국영화 '최악의 하루'(김종관 감독)는 그나마 CGV라는 대형 배급사가 배급을 맡으면서 사정이 나은 편이다.

현재까지 총 5만6천723명이 이 영화를 봤다.

'최악의 하루'는 배우 지망생 '은희'(한예리)가 오늘 처음 본 남자와 현재의 남자 친구, 한때 만났던 남자를 하루 동안 잇따라 만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멜로 영화다.

다양성 영화치고는 흥행 성적이 나쁘지는 않지만, 이런 기세가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개봉 첫날 스크린수 196개, 상영횟수 500회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69개, 178회로 크게 줄었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박근형 주연의 '그랜드파더'도 총 2만6천139명의 관객을 끄는데 그치며 고전 중이다.

극장 관계자는 "예전에는 개봉한 주의 주말까지 기다려주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개봉한 주의 주중 흥행 성적이 좋지 않으면 극장들이 주말에 스크린 배정을 크게 줄인다"고 전했다.

이런 현상은 여름 대작들의 스크린 독식 현상이 9월 초까지 이어지고 있는 점도 한몫했다.

1천만 관객을 훌쩍 뛰어넘은 '부산행'을 시작으로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 등 한국영화 대작 영화 4편은 올여름 차례로 바통을 이어받으며 흥행을 이어왔다.

메이저 배급사인 쇼박스가 투자·배급을 맡은 '터널'은 지난달 10일 개봉 이후 26일째 박스오피스 정상을 달리고 있다.

영화 자체가 주는 재미도 있지만, 스크린 수 732개, 상영횟수 3천179회로 현재 상영 중인 영화 가운데 가장 많다.

한 달 넘게 장기 상영 중인 '덕혜옹주'와 '인천상륙작전', '부산행'까지 네 작품의 스크린 점유율은 37.3%에 이른다.

통상 8월 하순에는 대작 영화의 기세가 한풀 꺾이지만, 올해는 9월 초까지 스크린 '점령'이 이어지면서 소규모 저예산 영화들이 특히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오는 9월 7일에는 추석 연휴를 겨냥한 대작 '밀정'(김지운 감독)과 '고산자, 대동여지도'(강우석 감독) 2편이 동시 개봉을 앞두고 있어 저예산 영화를 위한 틈새시장도 많지 않다.

그나마 외화 가운데는 '나의 산티아고'(9만1천406명), 재개봉작 '죽은 시인의 사회'(5만4천777명) 등이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상영 중이다.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한 영화인은 "최소한의 상영 기간만이라도 보장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며 "이러다가 다양성 영화들은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