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기작가 궈웨이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무제14’ 앞에 서 있다.
중국 인기작가 궈웨이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무제14’ 앞에 서 있다.
1980~1990년대를 풍미한 한국의 민중미술과 중국의 문화 암흑기였던 문화대혁명(문혁) 이후 태동한 ‘상흔(傷痕)미술’은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현실의 모순을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정치 성향의 화풍이란 점에서 비슷하다. 민중미술이 저항정신을 사실적 그림으로 강렬하게 표현했다면 상흔미술은 공산주의와 애국을 강조한 기존 미술을 깨뜨리고 인간 중심으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며 사실적이지만 감성적 부분을 강조했다.

최근 국내 미술시장에서 민중미술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상흔미술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인기 작가 궈웨이(56)가 처음 한국을 찾았다. 지난 1일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그는 “회화 기법을 활용해 공산주의에 치이고 자본주의에 멍든 중국인의 상흔을 부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쓰촨미술대학을 졸업한 작가는 그동안 문혁의 아픔 자체보다는 상흔의 영향을 받은 중국 젊은 세대를 소재로 작품을 발표해 왔다. 그가 ‘신생대(新生代)’ 작가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다음달 14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인간에서 인류로’. 중국 신세대들이 도시에서 경험하는 황량함과 비어 있는 감정을 즉흥적이고 속도감 있는 붓질로 묘사한 28점을 걸었다. 공산체제의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뿌리를 내리면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동작과 표정을 드라마틱하게 잡아낸 작품이다. 정치적 팝아트나 신냉소주의 화풍과는 사뭇 다른, 중국 사회에 번지는 극도의 개인주의적 감성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인간에게 상처만 준다는 그는 “예술은 현실을 이야기할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며 “급속한 자본주의 문화 유입 때문인지 중국인들은 뭔가 몽롱하고 불안한 심리 상태”라고 지적했다. 2003년 이후 ‘인류의 부활’을 작업의 화두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간의 본성과 무의식을 탐구해온 그는 군인 모자를 쓰고 다니는 동네 할아버지, 얼굴에 회색 물감을 칠한 젊은이, 몸부림치며 뭔가를 갈망하는 젊은 여성 등의 모습을 통해 중국 사회에서도 다양한 차별과 고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높이 3m에 달하는 대작 ‘무제14’는 회색빛 히잡을 걸친 여성의 얼굴에 파란 물감을 칠해 차별이 심한 중국 사회의 단면을 묘사한 대표작이다. 궈웨이는 “여성의 모습을 마치 오래된 필름을 인화한 듯 되살려 화면 위에 올려놨다”며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각을 서로 교차시켜 중국 사회 속에 숨겨진 차별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얼굴에 종이 가면을 덧씌운 것처럼 표현한 작품, 얼굴을 마치 붕대를 감은 듯 묘사한 작품 등에서도 중국인의 숨겨진 상흔을 감각적으로 읽을 수 있다. 작가는 “그림은 그 자체로 현실을 잉태하는 예술”이라며 “단순한 색채로만 표현하는 회화의 평면성에서 벗어나 종이나 천과 같은 오브제를 사용한 듯 물질성을 되살려 중국 젊은 세대의 현실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02)720-152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